요한의 제1성(聲)은 ‘회개하여라.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이다. 그리스도인들이 회개하는 대개의 이유는 구원받기 위해서이다. 한국 그리스도교에서 그리스어 ‘metanoia’를 뉘우치고 고친다는 의미의 회개로 번역한다.
그런데 회개는 그리스말 ‘metanoia’의 뜻을 제대로 옮기지 못하고 있다. metanoia의 meta는 trans(넘어서, 바뀌다) 또는 post(뒤따라)라는 의미이고, noia는 nous(정신, 얼, 본래적인 꼴)를 뜻한다. 우리말로 정확하게 새기면 ‘사람의 꼴이 바뀜’(transformation) 또는 ‘사는 방향이 바뀜’(conversion)이다.
metanoia란 말은 그리스 철학자들에게는 ‘신체적이고 감각적인 인간에서 정신적이고 예지적인 인간으로 변모해야 한다’ 또는 ‘신체적이고 감각적인 것에서 정신적이고 이성적인 것으로 방향을 바꾸어야 한다’는 뜻으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성서는 이 말을 첫째, 세상에 대한 미련으로부터 영원한 하느님으로 방향 전환해야한다는 의미로 사용한다(마태오, 6, 25~34 : 먼저 하느님의 나라를 구하라). 한마디로 심보의 방향을 바꿔야 한다는 말이다.
둘째, 꼴이 바뀌어야 한다는 말이다. 자신의 비본래적인 모습에서 자신의 본래적인 모습으로 바꿔야 한다는 말이다. 이 말이 바오로의 서간에서 ‘하느님을 입어라’ 또는 ‘하느님의 형상을 입어라’라는 말로 여러 차례 나온다. ‘사람의 꼴이 바뀜’은 M. 에크하르트의 기본 사상이기도 하다.
그는 끊임없이 “인간은 단순한 선(善), 곧 신에게로 다시 되돌아가 그의 형상을 입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회개의 본래 뜻은 ‘변화무쌍한 세상으로부터 참다운 실재이신 하느님으로 방향 전환하여 그 분의 모습으로 변해야 한다’는 뜻일 것이다.
이는 자아와 아집 그리고 세상사에 사로잡혀 있는 삶에서 진리로 방향 전환함과 동시에 진리의 형상으로 꼴이 바껴야 한다는 말이다. 실제로 내가 행복하지 못한 순간들은 무엇인가에 끌려 다닌다는 느낌이 들 때이다.
돈·사회적 지위·사회적 평판·나의 못난 외모·나 자신의 완벽성에 대한 게걸스러운 집착, 그리고 그 밖의 나의 잡다한 욕망에 휘둘릴 때이다. 나를 괴롭히고 사슬 짓는 것은 바로 나 자신이다. 아무도 나를 괴롭히고 있지 않다. 내가 바로 나를 괴롭히고 있다.
하느님은 이런 것에 대한 집착으로부터 진리이신 자신에게로 방향 전환하라고 하신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끌려 다니는 것에서부터 그 분에게로 방향 전환하여 그 분의 모습으로 변해야 한다. 그럴 때, 그 분이 전적으로 자유로운 것과 같이 우리도 자유롭게 될 것이다. 우리도 풀려나게(구원) 될 것이다.
회개는 인생과 세계의 올바른 방향성에 대한 가르침이다. 어떤 방향을 향해 살아야하는가에 대한 가르침이다. 회개는 인간과 세계의 본래 모습에 대한 가르침이다. 해바라기가 해를 바라봄으로써 해를 닮아가듯 우리도 자신에 대한 집착에서 진리이신 하느님으로 방향을 전환하면, 우리의 모습도 하느님을 닮아갈 것이다.
선악(善惡)의 문제는 방향성의 문제이다. 마땅히 바라보아야 할 방향으로 바라볼 때 우리는 좋은 삶을 살게 되는 반면, 그릇된 방향으로 바라볼 때 나쁜 삶을 살게 된다. 인생의 방향성이 인간의 삶을 결정한다.
방향 전환과 사람 꼴이 바뀌어야 한다는 의미를 갖는 회개라는 말마디가 교회에서 참회와 같은 맥락에서 주로 사용된다. 참회는 잘못을 뉘우친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회개라는 말마디가 주로 윤리적 뉘우침을 뜻하는 말로 축소되고 말았다. 따라서 사랑의 종교인 그리스도교가 윤리적 엄격주의의 색채를 강하게 띠는 종교가 되었다.
플라톤은 아름다움 자체를 사랑하는 것을 좋은 사랑이라 한다. 그래서 아름다움 자체로 방향을 전환해야 한다고 말한다. 아름다움 자체가 바로 우리가 믿는 하느님이 아닐까. 우리는 불완전성뿐만 아니라, 완전성도 잠시나마 경험할 수 있다.
우리는 완전성에 대한 경험을 위대한 영성의 대가뿐만 아니라, 위대한 철학자(플라톤, 플로티노스, 아우구스티누스, 위(僞) 디오니시우스, M.에크하르트, 야콥 뵈메, 루이 라벨레, 노자, 장자, 후기 하이데거 등)에서 엿볼 수 있다. 이들이 바로 제대로 회개한 사람들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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