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지은 죄를 신부님에게 고백하는 일은 생각만 해도 떨린다. 어깨가 무겁다. 고백하는 것으로 마음이 홀가분하다면 종이에 빼곡하게 적어서 낭독을 하듯 읽어 가면 되겠지만,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을 용서하기가 더욱 곤혹스럽기에 다음으로 미루면 어떨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11월 말일은 대림 첫 주일이다. 교회 달력으로는 새해가 시작되기 때문에 한 해를 보내기 전 묵은 찌꺼기를 닦아내야 하는 일이 남아있는 데도 말이다. 판공성사표를 받아보는 순간부터 압박감에 시달렸다.
그건 오랜 시간 고백성사를 보기 위해 한 줄로 서서 기다리기 때문만도 아니었다. 신부님이 주는 보속 때문에 장애가 되는 것은 더욱 아니다. 사실은 두어해 동안 재산 손실은 물론 육체와 정신적인 충격을 준 사람을 용서해야 하는 부담감이 있어서였다. 그 사람을 생각만 해도 참아왔던 울분이 화산처럼 폭발을 하곤 한다.
또드락또드락 말발굽을 울리는 소리가 가을의 뒷모습에서 들려왔다. 며칠 전에 만난 자매의 깡마른 모습이 생각났다. 온갖 시련과 역경을 견디어 가며 살아가는 자매에게 나는 도움을 주지 못했었다.
“가슴앓이를 앓고 있어요”라고 하는 자매의 입술은 떨고 있었으며, 목이 메어 말끝을 흐렸다. 그러면서도 자매에게 상처를 준 사람을 일흔 일곱 번이라도 용서를 해야 되지 않느냐고 하는 그녀였다. 그녀는 분을 삭이느라 한 숨을 연거푸 내품었지만 그녀의 모습에서 그리스도의 사랑이 찰랑찰랑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그녀가 부러웠다. 상처를 준 사람을 용서를 한다는 그녀의 모습에서 나는 부끄러움을 느꼈다. 용서 따위에 잣대를 재고 있는 옹졸한 내가 얼마나 짧은 믿음으로 살고 있는지 한없이 부끄러운 가을의 끝자락이었다.
이소애(체칠리아.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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