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살아가면서 ‘기억’한다는 것은 참으로 중요하다. 우리는 미사를 드릴 때마다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Do this in memory of me)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되풀이하고 있다.
신학적으로나 성서적으로 ‘기억’은 참으로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구약의 이스라엘 사람들은 야훼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을 이집트 종살이에서 해방시켜주신 탈출기의 역사를 기억하였다. 우리도 예수님의 십자가상의 죽음과 부활을 기억하며 구원의 성사를 거행하는 것이다.
신앙의 영역뿐 아니라 인간사의 영역에서도 기억은 중요하다. 하지만 21세기 물질문명의 발전은 현대인들의 기억의 능력을 감퇴시키고 있다. 십여 년 전 휴대폰이 오늘날처럼 보급되기 전에는 우리 대부분은 전화번호들을 외우고 있었지만 요즘에는 사무실이나 심지어 집 전화번호마저도 외우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
통기타 들고 놀러 다니던 시절에는 유행가 가사는 모조리 외웠는데 노래방 문화에 점령당한 지 오래된 요즘은 애창곡 가사 한 가지라도 외우고 있으면 다행이 되었다.
하루하루를 마치 전쟁처럼 살아가는 우리들이지만 잠시 멈춰 서서 10년 전 기억을 돌아보자. 1998년 10월 18일은 우리 분단의 역사에서 한 획을 그은 날이었다. 이날은 강원도 동해항에서 금강호가 금단의 땅이었던 금강산을 향해 첫 출항을 한 날이다.
역사적인 첫 출항에는 900여 명이 탑승하였고 TV를 통해 지켜보던 실향민인 할머니는 죽기 전에 금강산이라도 보고 죽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렇게 시작된 금강산관광은 우여곡절을 겪지만 서서히 확대돼 2003년부터는 육로관광이 시작되었고, 2005년에는 관광객 100만을 돌파하였으며, 2007년 6월부터는 내금강 관광이 시작되었고, 올해 3월부터는 승용차를 타고 금강산 관광을 하게 되었다. 10년 만에 금강산 관광은 단순히 아름다운 금강산을 구경하는 것만이 아니라 남북 화해의 상징이 되었다.
하지만 지난 10년 동안의 금강산 관광은 다사다난(多事多難)했고, 호사다마(好事多魔)였다고 하겠다. 지난 7월 11일 새벽에 발생한 관광객 피살 사건은 남북한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 사건이었다. 무장한 군인이 민간인에게 총격을 가한 것은 있을 수도 없고, 일어났어도 안 될 유감스러운 사건이었다.
우리 정부는 즉각 북한에 공동 조사와 재발방지를 위한 조치를 요구하며, 이것이 이루어질 때까지 금강산 관광을 중단하겠다고 발표했다. 국민의 생명을 보호할 의무가 있는 정부로서 응당 마땅한 조치로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전문가들의 말을 들어보면 정부의 북한에 대한 요구 사항은 도가 지나쳤다는 것이다.
먼저 공동조사요구는 불가능한 것이라는 것이다. 세계 어느 주권국가가 자국에서 타국 사람이 죽었다고 양국이 공동조사를 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미국에서 우리 관광객이 총격을 받아 사망했다고 우리 정부와 미국 정부가 공동조사를 하는 것이 아니고 미국 정부의 조사 내용을 통보받는 것이고, 우리 정부가 판단할 때 미흡한 것이 있으면 그에 따라 재조사를 요구하는 것이 국제관례라는 것이다.
더군다나 금강산 관광객 피살 사건은 군사지역 내에서 발생한 사건인데 우리 정부가 공동조사를 요구한 것은 처음부터 무리수였다는 것이다.
1998년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내 벙커에서 권총상을 입고 사망한 김훈 중위의 의문사 사건에 대하여 민·군 공동조사를 수없이 요구했지만 국방부는 군사시설이라는 이유로 불허한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우리 정부는 허락 안하면서 북한에게만 하자는 것은 모순일 뿐 아니라 북한측에서 볼 때는 주권을 무시하는 것일 수도 있다.
관광객 피살 사건으로 중단된 금강산관광과 남북관계는 이제 남북한 당국 간의 감정싸움, 기(氣)싸움으로 변질되었다. 북한은 연일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비난을 언론에 쏟아내고,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을 이행하는 길로 나와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우리 정부는 북한의 버릇을 고친다는 원칙을 지키며 가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부시 행정부가 8년 중 6년을 대북 압박정책을 폈지만 돌아온 결과는 핵실험이었고 결국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북한을 해제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남북이 조금씩 양보하여 민족의 명산인 금강산을 다시 찾게 될 때가 언제일까?
아, 그리운 금강산, 왜 금강산은 항상 그리움 속에 남아있어야 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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