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천주교회 순교자 ‘하느님의 종’ 베드로 키베(岐部) 사제와 동료 187위 시복식이 11월24일 일본 큐슈 나가사키현 빅N스타디움에서 성대히 거행됐다. 가장 가까운 이웃 교회의 경사를 축하함과 동시에, 부러운 마음도 감출 수 없다. 한국 교회에는 현재 복자(福者)가 없기 때문이다.
일본은 유럽인들에게 ‘순교자의 나라’로 각인돼 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금교령(1587년) 이후 300여 년의 박해 기간을 거치면서 5~6만여명이 순교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일본 교회는 이미 1862년에 ‘26인 순교자’를 성인 반열에 올렸고, 1987년에도 16위의 성인(聖人)을 탄생시켰다. 기존에 모시던 복자 205명을 포함, 이번에 시복된 이들까지 포함하면 복자 수는 393명에 이른다. 한국 교회로선 부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성인과 복자의 수가 많고 적음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이는 시성시복의 진정한 의미를 모르고 하는 말이다. 교회가 시복시성을 추진하는 이유는, 이미 천국에 가 있는 그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현세를 살고 있는 우리 자신들을 위한 것이다.
일본 주교회의는 2006년 11월 ‘시복식 실시 요강(諡福式實施要綱)’을 확정, “시복식은 순교자의 영성을 체험하는 행사”라고 했다. 시복식을 복음 선포의 기회로써 일본의 온 교회, 특히 청년층을 활성화시키는 목표로 삼겠다는 의지도 표명했다. 시복식 자체가 일본 교회의 새로운 동력이 되고 있는 것이다.
한국 교회는 현재 하느님의 종 윤지충 바오로와 123위 순교자, 최양업(토마스) 사제의 시복을 추진하고 있다. 춘천교구도 1940~50년대 강원도와 함경도 지역에서 선교 활동을 하던 중 순교한 이들에 대한 시복시성을 추진하고 있으며, 성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도 한국진출 100주년(2009년)을 앞두고 소속 수도자 등 ‘20세기 순교자’ 36명에 대한 시복시성 추진을 지난해 공식 선포했다.
순교자들의 삶은 단순히 과거의 한 사건이 아니다. 인간 사회에서 일어나는 온갖 문제들에 직면하고 고민하면 할수록 그들은 우리 곁에 다가온다. 순교자들의 삶은 시공을 넘어 보편적인 것이다. 그들은 더 이상 타인이 아니다.
그들이 우리를 초대한다. 시복식은 순교자들이 우리들에게 베푸는 희망의 잔치다. 103위 성인 시성 25주년을 맞는 올해가 바로 그 희망의 잔칫상을 준비하는 원년이 되기를 희망해 본다. 한국도 ‘순교자의 나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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