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컷의 보도사진이 주는 메시지는 매우 강력하다. 그 영향력 또한 크다.
지난 22일자 신문들에 팔다리가 꼬챙이 같은 아이가 헝겊에 매달려 체중을 재는 사진이 실렸다. 영양실조에 걸린 중미(中美) 아이티의 한 여자 아이 모습이다. 네 살이라고 보도된 그 여아의 눈은 초점과 생기를 잃었고 머리카락은 눈썹에 붙어버렸다고 외신은 전했다.
아프가니스탄 사태가 한창이던 지난 2001년, 신문 1면을 장식했던 한 장의 사진은 세상을 울렸다. 미군기에 의한 피폭현장에서 포착된 일곱 살 아프가니스탄 소녀의 무표정한 얼굴, 그 뺨 위로 주르륵 흘러내리는 눈물, 클로즈업된 사진 속 소녀의 큰 눈망울에 깊게 배인 두려움과 불안감은 보는 이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필자는 15년 전, 아프리카 소말리아와 수단의 기아와 내전 사태, 가톨릭 긴급 구호 단체들의 활동상을 취재하기 위해 현지를 방문했을 때 비슷한 광경을 목격한 적이 있다.
수단의 결핵요양소에서 본 한 소녀의 모습은 충격이었다. 16세라는 안내원의 말에 초로(初老)의 할머니를 연상했던 나는 할 말을 잃었다. 마치 죽도(竹刀:검도 수련때 사용하는 대나무로 만든 검)처럼 말라붙은 팔 다리를 늘어뜨린 채 오그라붙은 상반신을 훤히 드러낸 채로 낯선 방문객을 바라보던 그 소녀의 눈빛을 보는 순간 “아” 하는 탄식이 절로 나왔다.
부끄러움 조차도 사치로 만들어 버리는 인간성 상실의 현장. 그곳에는 인간으로서의 마지막 자존심도 포기하게 만드는 뻔뻔함만이 남아있었다.
김장훈, 문근영, 차인표…. 이 이름들의 공통점은? 그렇다. 우리 사회를 따뜻하게 데워주는 기부와 나눔의 천사들이다.
배우 문근영씨는 2003년부터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8억5천여 만원을 기부해 개인 기부자로서는 최고 액수를 기록했다. 그러면서도 이름 밝히기를 끝까지 마다했다. 문근영도 그의 부모도 “대중의 사랑으로 사는 연예인이 수입을 사회에 환원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말했다.
가수 김장훈씨의 기부 선행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자신은 월세를 살면서 그동안 40억이 넘는 액수를 사회 곳곳에 기부했다.
차인표 신애라 부부는 예은, 예진 두 딸 아이를 입양해 키우고 있다. 입양은 큰 결심이 필요한 일이다. 가족들의 이해는 물론이려니와 사랑과 행복을 나누고자 하는 참사랑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차인표씨 부부가 공개 입양 방식을 선택하는 것도 이런 뜻을 함께 나눠보자는 취지일 것이다.
앞선 두 장면을 보면서 기부 천사들을 떠올린 것은 나눔만이 인간성 상실의 위기를 극복할 유일한 대안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기근과 기아 사태가 어디 아프리카와 아이티 뿐이겠는가. 휴전선 너머 북한 땅에도 주린 배를 움켜쥔 아이들이 넘쳐난다.
굶겨 죽이지 않으려 단돈 10원에 자식을 팔아야 하는 어미. 그 어미도 너무 배가 고파서 몸을 파는 꽃뱀이 되어 거리를 떠돈다. 나누지 않을 때, 인간성과 공동체성은 여지없이 파괴되고 만다. 그 상실의 현장은 오늘도 지구촌 곳곳에서 끊임없이 되풀이된다.
탐욕이 빚어낸 세계 금융위기의 최대 희생양은 빈국(貧國)이다. 선진국들이 대외 원조를 크게 줄일 것이란게 이유다. 경제위기가 본격화하면서 국내 기부 액수가 현격히 줄어들고 있다는 보도들도 나온다. 우리 사회에 불어닥칠 한파가 불 보듯 하다. 기부 천사들의 선행은 이러한 때에 더욱 감동을 안겨준다.
이 해의 마지막 한달을 남겨 두고 있다. 그 불쌍한 아이들을 생각하면서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되돌아 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저 가난한 과부가 헌금함에 돈을 넣은 다른 모든 사람 보다 더 많이 넣었다. 저 과부는 궁핍한 가운데에서 가진 것을 다 넣었기 때문이다.”(마르 12, 4 3 ~ 4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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