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대학 다닐 당시 가깝게 지내던 선후배 5명이 10여 년 만에 모였다. 사는 게 바쁘다는 핑계로 못 보던 옛 동료들을 만나 지난 추억을 회상하며 이야기꽃을 피우니 다시 20대 그 시절로 되돌아간 느낌이었다.
빛바랜 군복 바지에 헐렁한 운동화를 신고 다녔던 한 선배는 이젠 말쑥한 정장 차림의 중년으로 변했고, 독재타도를 외치며 후배들을 이끌었던 또 다른 선배는 직장 얘기, 가족 얘기를 쏟으며 자신의 힘든 삶에 대해 토로했다. 세월의 흐름에 점차 변해가는 우리 각자의 모습을 보며 허무한 마음이 드는 동시에 그 때의 낭만과 열정, 추억들이 새삼 그리워졌다.
필자는 ‘7080’ 세대다. 이 세대는 1970~80년대 캠퍼스 추억을 간직하고 있는 30대 중반에서 50대 초반의 중·장년층을 일컫는다. 독재정권 시절 민주화 투쟁에 앞장섰으며,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통기타와 음악다방 등 낭만적 문화를 향유했다. 양희은, 송창식, 김민기, 정태춘 등의 음악을 통해 삶의 위안을 얻었고, 막걸리 집과 담배연기 자욱한 음악다방에서 시대적 아픔을 한탄하며 정치적 불의와 타협하지 않으려 했던 이들이 7080 세대들이었다.
지금이야 상상도 못하겠지만 당시엔 학교 근처에서 학생증만 맡겨도 얼마든지 막걸리를 마실 수 있을 만큼 낭만적이었다.
하지만 이들도 세월의 흐름을 비켜갈 순 없었다. 이젠 한 집안의 가장으로, 한 직장의 간부로 세상과 타협하며 힘겹게 삶의 무게를 지탱해나가고 있다. 기성세대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하며 사회 정의를 부르짖던 이들이 입장이 바뀌어 후세대들에게 비판의 대상이 되고 말았다.
역설적으로 그만큼 현 한국사회와 한국교회 안에서 7080 세대들의 역할과 비중이 크다는 의미다. 노년 세대와 젊은 세대를 잇는 소통자이며, 사회와 교회를 짊어지고 이끌어갈 책임자들이 바로 이들이다. 실제로 이 세대들은 오늘날 주도적으로 우리나라 정치, 경제 각 분야에서 책임자로 또는 중간자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필자는 무엇보다 이들에게 소통자로서의 역할을 희망한다. 냉담률이 급증하고 젊은층이 교회 안에서 이탈해가는 상황에서 주도적으로 우리 교회를 바로 세울 몫이 이들에게 있다고 본다. 돌이켜보면 필자는 청소년 시절부터 매일 성당을 오가며 살았다.
성당 선후배간의 ‘끈끈함’도 대단했다. 초등학교 때부터 해오던 복사, 여름방학이면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고 기다렸던 산간학교(현 신앙학교), 성탄 대축일에 신자들에게 선보이기 위해 날밤 새며 준비했던 연극공연 …. 이젠 추억의 저편에 자리하고 있지만 이러한 모든 것이 오늘날 나의 신앙에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시대는 변했다. 오늘날 청소년 및 젊은 층의 문화와 바람도 많이 달라졌다. 무조건 교회방침에 따라 오라고 요구한다면 곤란하다. 7080 세대들은 이 땅의 청년들이 바라고 희망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읽고 신앙의 좌표를 제시할 책임이 있다.
오늘도 삶의 세파에 시달리며 하루하루 살아가는 이 땅의 7080 세대들에게 깨어 일어나자 외치고 싶다. 우리가 진정 바라고 꿈꾸었던 희망과 미래를 자녀 세대인 젊은이들에게 일깨우라 요청하고 싶다. 모처럼 옛 벗들과 통기타 노래 울려 퍼지는 카페에서 그 때 그 시절을 추억하며 술 한 잔 기울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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