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주교회의가 하느님의 모습으로 창조된 인간의 존엄성이 무시되고 인권이 짓밟히고 있는 현실이 개선되길 바라는 취지에서 대림 제2주일을 ‘인권주일’로 제정한 지 스물일곱 번째를 맞았다. 이러한 시대적 요청에 천주교 인권위원회를 비롯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홀로, 또는 공동체로 응답해 왔다.
아기 예수님을 맞을 준비를 하는 이때에, 우리는 소중한 존재임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하지만 우리 주위에는 여전히 인권침해를 당하는 이들이 있다. 더욱이 인권을 보호해야 할 국가의 잘못된 정책과 제도가 오히려 인권을 침해하는 상황을 야기하기도 한다.
한 예로, 작년 7월부터 시행된 소위 ‘비정규직 보호법’은 수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낳아 ‘비정규직 양산법’이라는 별칭이 맞아가고 있다. 이 법으로 인해 비정규직 노동자만 어렵게 되는 것이 아니라 그 가족들마저 생존의 어려움에 처하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우리는 IMF사태를 거치며 불안정한 가정경제 상황이 가족의 불화는 물론, 가족 해체까지도 초래하는 현실을 목격해왔다.
요즘 만나는 노동자들은 늘 생계와 자녀양육문제에 대해 염려한다. 또한 쉼터에서 지내는 청소년들을 통해서도 부모의 고된 삶을 간접적으로 알게 된다. 청소년들은 쉼터에서 제공된 음식과 잠자리, 상담과 다양한 프로그램 활동을 통해 안정을 찾아가면서 자신의 재능과 가능성을 발견하며 새롭게 살 힘을 얻곤 한다.
하지만 정작 돌아가야 할 가정에서 그들을 도저히 데려갈 수 없는 사례가 계속 늘고 있다. 청소년들이 일용할 양식과 잠자리 걱정을 덜 수 있는 가정에서 지내며, 신뢰 속에 ‘자기 존중감’이 자연스럽게 체득되고 ‘존재 자체로서의 존엄함’을 배우는 사람들이 되어야 할 터인데….
이렇듯 부모의 불안정한 일자리와 실직문제는 자녀에 대한 기본적인 보호역할마저 다 할 수 없게 만들고, 부모의 어려움이 고스란히 청소년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나아가 한 가정문제는 거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사회문제로 악순환되는 것이다.
이러한 사회현실 속에서 일하는 청소년들도 계속 늘고 있다. 지난 5월 한 민간단체가 서울, 인천 등 대도시에서 아르바이트 경험이 있는 청소년 150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결과는 청소년들의 노동기본권과 인권이 침해당하는 안타까운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
이들이 최저임금에 못 미치는 ‘헐값 노동력’으로 일터에서 이용당하고 있다는 사실이 여실히 드러났다. 면접조사한 12명 청소년 중에는 일터에서 물리적 폭력, 언어폭력은 물론 성희롱까지 당한 경험이 있었다(아르바이트청소년 노동인권실태보고, 2008. 6. 4).
최근 노동부가 전국 1308개 연소자근로자 고용사업장에 대한 지도·점검을 실시한 결과에서도 1021개사업장에서 2544건의 연소자 관련법 위반사항이 적발됐는데, 특히 최저임금 미준수, 근로시간 및 야간 휴일근로 위반 등 청소년 노동자들의 기본적인 근로조건 보호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11. 14 보도자료).
현실이 이렇기에 1991년에 ‘유엔 아동·청소년 권리조약’을 비준한 우리나라에서는 청소년들이 힘들게 일한 대가로 받는 임금과 관련해 적어도 최저임금이 보장되고, 열악한 노동조건의 합리적인 법적 구제 방안과 제도적 장치가 당연하고도 시급하게 마련되어야 한다.
아울러 청소년 자신이 하는 노동의 의미와 소중한 가치, 노동권에 대한 감수성을 키우고 기본권 침해사실에 대응할 수 있는 힘을 길러주는 교육을 구체적으로 시행해야 할 것이다. 프랑스를 비롯한 몇몇 선진국의 경우, 학교 교육과정에서 노동기본법과 권리와 책임을 배우며 현실적용이 가능한 교육이 이루어진다. 하지만 우리 사회분위기는 학교로 하여금 여전히 입시위주의 진로지도에 매달리도록 몰아가고 있다.
지금까지 가톨릭계 교육기관(학교, 주일학교, 교육관 등)에서는 청소년들이 ‘자신들이 하느님께 사랑받는 존재로서의 소중함’을 알고 ‘삶의 의미’를 발견함으로써 이 세상의 ‘빛’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교육해왔다.
여기에 덧붙여 워킹 푸어(Working Poor, 힘들게 일해도 가난한 노동자)가 늘어나는 사회 속으로 들어가야 할 청소년들에게 경제와 노동에 대한 가치교육, 기업윤리 등의 실질적인 교육을 해야 한다. 또한 자신의 권리를 정당하게 주장하고 자신의 책임 또한 기꺼이 다할 수 있게 돕는 ‘인권과 노동기본권’에 관한 교육을 체계적으로 해나가기를 소망한다.
이를 통해 우리의 미래인 청소년들이 진리와 삶의 풍요로움에 눈뜨고, 사회적 책임을 기꺼이 할 수 있는 사람, 그리스도가 한 가운데 오신 이 세상에 밝게 기여하는 사람으로 성장하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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