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 제3주일은 한국교회가 정한 자선주일이다. 한국교회가 대림시기에 이 뜻 깊은 주일을 정한 것은 주님을 맞아들이는 행위와 사랑 실천이 불가분의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자선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성 바오로 사도의 말에 따르면 모든 법은 사랑으로 요약된다(로마 13, 8~10). 심지어 사랑 그 하나만 있다면 인간의 모든 활동은 종교적 특성을 가질 수 있고 예배 행위가 될 수 있다(야고 1, 26~27).
문제는 이러한 애덕 실천이 영성 생활(영적 성장)의 테두리 속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많은 신앙인들이 자선 행위를 어려운 이웃에게 단순히 물질적 정성을 전달하는 것으로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신앙이 없는 이들도 어려운 이웃을 돕는다. 아무리 사악한 사람이라도 자신의 가족은 사랑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신앙인의 애덕 실천은 다른 의미를 지닌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신심은 사랑과 함께 자란다”(신학대전 2~2부 82문 2항1)고 했다.
그리스도교적 이웃 사랑에는 조건이 없다. 이웃에게 하느님을 섬길 가능성과 같은 다른 무엇이 있기 때문에 그를 사랑하라는 것이 아니다. 이웃 안에서 인격 자체인 하느님의 모상을 보고 사랑해야 한다. 애덕 실천이 영적 성장과 연관을 갖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웃에서 하느님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신앙인이라면 사랑을 실천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모든 영성 생활은 그리스도의 사랑에 참여하면서 변화된다. 더 나아가 애덕 실천은 하느님 사랑의 표징이다. 누가 ‘나는 하느님을 사랑한다’하면서 자기 형제를 미워하면 그는 거짓말쟁이 이다. 눈에 보이는 자기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사랑할 수는 없다(1요한 4, 20).
자선은 물 잔에 물이 넘치듯, 하느님 사랑이 넘쳐 나오듯이 그렇게 이뤄지는 것이어야 한다. 하느님을 사랑하면 자선을 행하지 않을 수 없다. 이웃사랑은 성령으로 우리 마음에 부어진 하느님 사랑에서 나온다. 진정한 애덕의 시초와 종착점은 하느님이며, 이웃은 하느님 때문에 사랑을 받아야 한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영성 생활의 본질은 애덕이다. 오직 애덕이 모든 덕의 조건이며 종교적인 덕의 조건이다. 애덕 없이는 모든 것이 헛되고 의미가 없다(야고 1, 26~27;마태 7, 2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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