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성탄대축일이다. 모든 사람을 비추는 참 빛이 세상에 왔다(요한 1, 9). 예수성탄대축일 낮 미사 복음 환호송에서 외치는 내용처럼 우리에게 거룩한 날이 밝았다. 참으로 기쁜 날이 아닐 수 없다. 성탄은 모든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시는 하느님께서 우리 바로 옆에서 함께 계신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大)사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쁨과 동시에 우울한 마음 또한 감출 수 없다. 그리스도교 신자 가득한 한국 사회가 보여주고 있는 최근 일련의 모습들은 예수 성탄의 의미를 찾을 수 있을지조차 의문이 들 정도다.
정진석 추기경이 예수성탄대축일 메시지에서 언급한 대로 최근 우리 사회는 생명의 존엄성이 훼손되고 거부되는 행태가 만연하고 있다. 이혼과 낙태, 자살률은 매년 높은 수치로 증가하고 있으며 인간 생명에 대한 이러한 경시 풍조는 여러 가지 형태의 폭력과 비인간적인 범죄의 증가로 나타나고 있다.
돈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황금만능주의는 인간을 극도의 이기주의로 내몰고 세상을 갈등과 투쟁의 장으로 만들어버리고 있다. 사람들은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으며, 다른 사람들의 주장을 억누르기에만 급급한 모습이다. 이기심과 불목이 가득한 오늘날, 구세주의 탄생은 그래서 더욱 간절한 희망으로 다가온다.
해법은 구유에 누워계신 아기 예수의 모습에서 알 수 있듯이 비움과 나눔이다. 욕심과 이기심은 아기 예수께 경배하는 신앙인의 올바른 몸가짐이 아니다. 강생의 신비를 통해 우리는 가난한 곳으로, 가장 낮은 곳으로 임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참으로 높으신 분이 당신 자신을 한없이 낮추셔서 우리 곁으로 다가오셨듯이 우리는 모든 교만과 자만심을 버리고, 이기심과 자긍심을 버리고 이웃에게 다가가야 한다.
성탄을 맞이하여 우리 사회의 모든 사람들이 새로운 몸과 마음으로 변화되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기원한다. 그래서 우리 사회가 이기심이나 소유욕에 지배되지 않고 고통 받는 이웃을 외면하지 않으며 어떠한 생명도 소외되거나 경시되지 않는 건강하고 바람직한 사회가 되기를 희망한다.
연말연시를 맞아 혹시나 들뜰 수 있는 마음을 다잡고, 조용히 성체 앞에 무릎을 꿇자. 가장 낮추고 겸손해 짐으로써 가장 풍요롭고 가장 부유한 은총의 부자가 되어보자. 다시 한번 아기 예수의 탄생을 온 누리와 함께 기뻐하며, 그분의 축복이 온 세상에 내리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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