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예수성탄대축일)다. 어떤 이들은 독일 작가 호프만의 원작과 러시아 낭만파 작곡가 차이코프스키의 음악이 만난 ‘호두까기 인형’을 떠올릴 것이다. 찰스 디킨스의 ‘크리스마스 캐롤’에 나오는 스크루지 영감을 기억해낼 수도, 맥컬리 컬킨 주연의 영화 ‘나홀로 집에’를 생각할 수도 있다.
크리스마스는 또한 많은 이들에게 아련한 첫사랑으로 기억으로, 유년시절 산타클로스 할아버지의 푸짐한 선물로 마음 한 구석에 남아 있다.
입가에 미소 짓하게는, 나만의 크리스마스 추억이 있다. 초등학교 3학년 때의 일이다. 해가 한 뼘이나 남았을까. 서쪽에서 사선으로 오는 햇빛이 아주 조금 황금빛을 띠고 있을 때였다.
천사 같이 눈부신 모습의 여대생이 다가와 말했다. “교회에 나오지 않겠니?” 며칠 전 마을에 개신교회가 들어온 것은 알고 있었지만 종교가 무엇인지, 기도가 어떤 것인지도 몰랐던 나로서는 관심 밖의 일이었다. 하지만 사탕 등 맛있는 것을 주고, 재미있는 인형극도 보여 준다는 말에 그 자리에서 여대생 누나(나중에 안 사실이었지만 그 여대생은 개신교 교리교사였다)를 따라 나섰다.
며칠 지나지 않아 크리스마스 이브를 맞았고, 그 날 밤 교회에선 작은 잔치가 열렸다. 여대생 누나, 아니 교리교사를 중심으로 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간식을 먹고 있을 때였다.
“영혼이 내 몸 속 어디에 있나요? 심장과 위, 간, 콩팥은 여기에 있는데….” 몸 이곳저곳을 찌르며 의아한 눈으로 교리교사를 쳐다보며 물었다. 초등학생으로서 당연히 가질 수 있는 의문이었다. 그러자 교리교사가 빙긋이 웃으며 말했다. “어머니를 사랑하지? 동생을 사랑하지? 그 사랑이 몸 속 어디에 있을까?”
세상에는 빵보다 더 소중한 그 무엇이 있다는 것을 최초로 깨닫는 순간이었다. 교리교사는 그리고 내 손을 꼭 잡고 이렇게 말했다. “앞으로 어디를 가든지, 어떤 곳에서 살든지, 가장 먼저 십자가가 보이는 건물을 찾아가 기도해. 하느님께선 너의 기도를 언제나 들어 주시는 분이야. 약속할 수 있지?” 교리교사는 손가락을 걸자고 했다. 크리스마스 이브, 그렇게 약속 하나가 만들어 졌다.
몇 달 후, 부모님을 따라 이사를 하게 됐다. 초등학생은 교리교사와의 약속을 마음에 새기고 또 새겼다. 이사를 하자마자 인근에 서 십자가 있는 건물부터 찾았다. 그리고 그 교회에 열심히 나갔다.
부모님은 직장 때문에 그 이후로도 자주 이사를 했다. 그때 마다 초등학생은 집에서 가장 가까운 개신교회를 홀로 찾아가 기도했다.
천주교와 개신교의 차이점을 모를 나이였다. 천주교라는 종교가 있는 것도 몰랐다. 초등학생이 중학생이 된 어느 날. 부모님은 또다시 이사를 했고, 중학생은 크리스마스 이브의 약속대로 십자가 있는 건물을 찾아 들어가 “예배 시간이 언제예요?”라고 물었다. 그곳이 성당이었다.
수녀님이 교리를 받으라고 했고, 그렇게 세례를 받았다. ‘나홀로 세례’후 얼마 지나지 않아 부모님과 동생 등 가족도 모두 세례를 받았다.
크리스마스는 특히 동심(童心)과 어울린다.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전국 수많은 성당과 교회운영 복지시설, 교회 단체에서 다양한 잔치를 준비하고 있다. 예수님께서 오시는 이 날 밤. 교리교사의 말 한마디가, 우리의 말 한마디가 한 인생을 바꿀 수 있다. 단순한 가능성이 아니다. 실제로 그렇다.
지금은 나이 50대 중반을 넘겼을 것이다. 눈부셨던 그 여대생 개신교 교리교사 선생님은 지금쯤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계실까.
메리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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