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신학은 그리스도교 2천년 역사 가운데 나온 신학 중에 하나다. 우리들에게 ‘해방신학’이라는 용어가 낯설지 않은 것은 무엇 때문인가?
교황청과 대표적인 해방신학자인 레오나르도 보프 신부와의 논쟁, 해방신학이 마르크스의 사회분석이론을 신학에 접목했다는 사실, 보편적인 사랑이 아닌 가난한 사람을 우선적으로 선택하는 ‘편파적인’ 사랑과 가난한 자, 억눌린 자, 소외당한 자의 해방을 위한 싸움에 있어서 폭력의 방법을 사용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았다는 쟁점들 때문일 것이다.
해방신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신학이 태동된 남미의 특수한 역사적 상황을 이해해야 한다. 당시 남미 인구의 3분의 2가량이 기아 상태로 절망적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남미의 해방신학은 이런 절망적인 시대 배경 속에서 교회의 책임을 통감하면서 태동된 신학이다.
해방신학의 또 다른 배경은 1968년 메델린에서 개최된 제2차 남미 주교회의다. 메델린 회의를 통하여 ‘해방’이 남미교회의 사명임을 천명했고, 해방사상이 남미의 사회·정치적 중요 사상이자 동시에 중요한 신학적 용어로 부각됐다.
메델린 회의에서 가난과 구조적인 폭력을 지적한 점, 가난의 원인이 제국주의 국가들에 의한 경제적 종속에 있다고 분석한 점, 해방에 대한 성경의 근거를 제시한 점, 교회는 가난한 이들과 연대하여 사회의 구조적 불의와 억압적 구조를 배격해야 한다고 천명한 것이 해방신학의 교회적 배경이 되었다.
남미의 해방신학은 어느 특정인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이미 남미의 많은 성직자와 수도자, 평신도들이 가난한 이들을 위한 해방에 투신하고 있었다. 그중 한명이 바울로 프레이리(Paulo Freire)였는데, 그는 해방신학 방법론의 핵심이 되는 ‘실천’(PRAXIS)의 개념을 제공한 장본인이다.
프락시스라는 말은 ‘생각하는 행위’라는 뜻을 지닌 용어로, 사고나 이론이 분리된 행동이 아니라 이론과 병행하는 행위라는 의미의 말이다.
해방신학은 기존의 서구신학과는 다른 인식론적 입장을 가지고 있다. 해방신학자들은 신학하는 방법이 올바른 것이어야 신학의 내용도 올바른 것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구티에레즈(G. Gutierrez)는 하느님을 믿는다는 것은 하느님의 존재를 사색함에 있지 않고 믿는 자의 신앙적 실천 행위에 달려있다고 한다. 이렇게 해방신학은 “진리는 실천을 통해서 실현된다”는 인식론적 전제를 내세운다.
해방신학의 인식론적 관점에서 볼 때 성경의 원초적 역사성을 현실의 상황에 그대로 적용할 수 없는 어떤 괴리가 있는데 신학이 이 간격을 메워주는 작업이요 수단이라는 것이다. 이런 수단으로 해석학적 순환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전제조건이 필요하다.
첫째, 현실에 대한 강한 회의다. 즉 지금까지 삶, 죽음, 지식, 사회, 정치 등에 대해 가지고 있던 사고나 가치판단에 대한 회의가 전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 성경의 관습적인 해석에 대한 회의다. 지금까지의 재래적인 해석방법과 가치판단에 대하여 의문을 제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해방신학자들은 그리스도인이 성경을 해석할 때 빠지기 쉬운 두 가지 위험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다.
첫 번째의 위험은 성경을 해석할 때 신학적 숙고 없이 성경의 권위만으로 성경의 말씀을 역사적 현실에 무조건적으로 적용(APPLICATION)함으로써 일어나는 위험에 대해 지적하는 것이다.
두 번째 위험은 역사적 현실에서 행위의 결단 혹은 정치적 결단을 정당화(JUSTIFICATION)하기 위해 성경의 구절을 임의적으로 선택하거나 해석하는 위험을 지적하는 것이다. 해방신학은 성경을 해석할 때 성경의 말씀을 무조건적으로 현실에 적용하는 위험성과 역사적 현실을 정당화시키기 위해 성경 말씀을 자의적으로 인용하는 위험성을 경고하고 있는 것이다.
2008년 한 해를 보내며 해방신학의 역동성이 떠오르는 것은 우리 교회와 사회의 현실 때문이다. 언제부턴가 교회 안에서 역동적인 신학의 모습보다는 관념적인 서구신학이 더 강조되고, 교회는 중산층화돼 가난한 이들을 위한 우선적인 선택이라는 복음의 가치를 언급하는 사목자도 줄어버렸다.
교회의 현실 참여는 교회의 전통적인 가르침임에도 정치적이라는 이유를 들이대며 비판하는 것이 일반적인 것이 되어버렸다. 우리 사회는 일본의 식민지 지배를 스스로 미화하고, 안중근 의사를 테러 분자로 매도해버리는 역사교육을 시키게 되었다. 도덕과 가치도 돈 앞에서는 맥을 못 추는 현실을 체험하면서 ‘해방’의 복음을 실천하기 위해 투신했던 해방신학자들, 실천적 신앙을 강조하는 해방신학이 그리워진다.
박창일 신부(예수성심전교수도회·평화3000운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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