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이 되면 왠지 무언가 좋은 일을 하면서 한 해를 마감하고 싶은 충동이 생긴다. 그래서인지 자원봉사 인구도 증가하게 되고, 어려운 사람들을 위한 후원금도 줄을 잇게 된다. 물론 이는 좋은 일이며 칭찬할 만하다. 하지만 솔직하게 말하면, 일회적이고 무계획적인 자선은 그들에게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엠마우스 공동체 운동의 창시자이며 프랑스 국민의 국부로 추앙받았던 피에르 신부가 어느 날 한 남자와 만나게 된다. 그는 아버지를 살해하여 오랜 감옥살이 끝에 세상에 나왔으나 딸에게서까지 외면당한다. 그러자 그는 자살을 시도했다. 그야말로 인생의 낙오자나 다름이 없었다.
그런 그가 피에르 신부를 만나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하지만 그가 시작한 일은 무슨 고상한 일이 아니었고 단지 피에르 신부가 집 없는 사람들을 위해 집을 지어주는 사업을 하는데 나무판자를 나르는 정도의 단순한 일이었다. 그러나 그는 이렇게 말한다.
“신부님이 돈이든 집이든 일이든 그저 베푸셨다면 아마도 저는 다시 자살을 기도했을 것입니다. 제게 필요한 것은 살아갈 방편이 아니라 살아야 할 이유였기 때문입니다.”
상대방의 자존을 지켜주는 것은 그 사람을 변화시키는 가장 큰 힘이다. 그러므로 자원봉사도 그저 일회적인 자선 행동으로 머무르기 보다는 상대방이 한 인간으로서의 삶을 살 수 있도록 계획적이고 지속적으로 도와주어야 한다. 바로 이 점에서 자원봉사 리더십이 필요한 것이다. 올바른 리더십을 갖고 자원봉사를 하게 될 때, 봉사를 하는 사람도 그리고 수혜를 받는 사람도 행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원봉사 리더십의 첫째 요건은 인간의 다양한 잠재력에 대한 믿음이다. 잠재력에 대한 믿음은 곧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믿음이다. 자원봉사는 단지 주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자존을 인정해주는 것이어야 한다.
둘째로는 안과 밖의 소통을 위한 균형감각이다. 즉, 자아와 외부의 적절한 균형을 잡아주기 위해 상대방의 어려움을 들어주고 그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현실적으로 이룰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할 것이다.
셋째로는 상호작용에 대한 철학이다. 다시 말해 자원봉사활동은 결코 일방적으로 주는 행위가 아니라는 것, 그것의 피드백이 나를 변화시키고, 나아가 우리가 살고 있는 공동체를 어떻게 변화시켜 나가는가에 대한 분명한 믿음이 있어야 한다. 자원봉사활동이 전 세계적으로 중요시되고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철학 때문이다.
외국의 명문대에서는 입학사정 때 성적 외에 중요시하는 두 가지 요소가 있다. 그것은 학생의 리더십 경험과 자원봉사 경험이다. 우수한 인재란 두뇌가 명석한 것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사회공동체를 위해 헌신할 자세가 되어있는지 그리고 그것을 실제로 실천하는 사람인지를 평가하기 위함이다. 즉, 더불어 리더십이 있는가를 보는 것이다.
과거에 비해 우리나라에서도 자원봉사활동이 많이 증가하였다. 그리고 그 내용도 크게 변화하고 있다. 즉, 다양한 연령층이 참여하고 있으며, 여성뿐만 아니라 남성의 참여도 증가하고 있고 종교단체 이외의 곳에서도 자원봉사가 많이 이루어지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봉사점수 때문에 할 수 없이 하는 청소년들도 있고, 아무런 계획이나 생각없이 일회적인 자선행위로 이루어지는 봉사활동도 많다. 물론 하지 않는 것 보다는 좋은 일이지만 그래도 좀 더 의미있고 효과적인 자원봉사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상대방의 입장에서 계획하고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는 봉사활동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에 대해 평가하고 반성하는 과정도 필요하다.
물론 이러한 일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또 다른 조직과 인력이 요구된다. 하지만 이러한 어려움을 감수하더라도 우리 성당 공동체에서부터 자원봉사 리더십의 필요성에 대해 인식하고 보다 체계적인 관리와 교육을 통한 자원봉사가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경제의 논리, 상호 교환의 논리에 밀려 인간다운 삶을 살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그들과 소통하면서 더불어 살아가기 위한 차원에서 자원봉사가 실시된다면 훨씬 의미있는 활동이 될 수 있을 것이며, 우리 사회를 살기 좋은 사회로 만들어 갈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 한 마리의 나비가 기후를 변화시키는 것처럼, 한 사람의 진정한 봉사자가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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