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여행을 하노라면 가끔 길을 묻게 된다. 그 대상이 늘상 할아버지일 경우가 많은데, 그 할아버지들은 이상하게도 내가 묻는 길에 대한 대답이 한결같이 같았다는데 놀라게 된다. 가는 곳도 묻는 길도 다른데 할아버지들의 대답이 같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할아버지 00가 어딥니까?”
“저기!”
그래서 처음에는 저기를 향해 걸었다. 그런데 아무리 걸어도 저기는 나오지 않고 길은 더욱 아득하기만 했던 기억을 누구나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다시 묻는다. 한 아주머니에게 할머니에게 그 길을 물으면 그들 역시 ‘저기’라고 손으로만 가리켜주고 묵묵히 가 버린다.
다시 나는 어떤 할아버지를 만났다. 그리고 같은 길을 물었다. 할아버지는 다시 그렇게 말한다. “코앞이야”
그래서 다시 걸었다. 바로 코앞이라니까…. 그러나 그 코앞은 나타나지 않고 10리도 20리도 걸어야 겨우 어둑한 저녁나절에 도착했던 것을 나는 기억하고 있다. 분명 그곳은 있었고 그들의 둔한 거리감각으로 나는 고생을 한 셈이 된다.
그때는 화가 치밀었다. 바보 같은 노인들 때문에 헛고생을 했다고 말이다. 처음부터 멀다고 말해 주었더라면 마음으로 작정이라도 할 것인데…. 바보같은 노인들, 코앞이라니….
그러나 살아오면서 장소를 가리키는 부사적 언어로 이만큼 넓고 큰 의미를 지닌 절묘한 언어도 없다는 감탄을 누를 수 없다.
그렇지 않은가. 우리는 모두 ‘저기!’를 가고 있는 것이며, 저기에 도달할 때까지는 내가 생각하고 화를 낸 헛고생이야말로 진정한 삶의 학습이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그 고생이야말로 헛고생이 아니라 진정스럽게 치러야 할 생의 과목이 아니었을까?
요즘은 많은 사람들이 자동차에 ‘네비게이션’을 달고 다닌다. 길을 물을 필요가 전혀 없다. 그 친절한 기계가 작은 골목까지 다 가르쳐주고, 소요되는 시간도 알려 주고, 속도까지 조절해 준다. 운전자가 예상 시간을 조절해 움직일 수 있게 한다.
세상에 이렇게 편안한 일이 있나? 헛고생을 아예 차단한 이 기계를 우리는 새로운 신종 문명으로 이미 다 받아 들였다. 그러나 오늘날 현대인들에게는 자동차에만 네비게이션이 있는 것이 아닌 것 같다. 자신의 인생도 이 네비게이션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젊은이들은 어머니, 아버지, 선생님의 명령에 따라 움직인다. 그래서 고생을 전혀 해 보지 못했고, 길을 잃어 본 일도, 쓰러지고 수렁에 빠지는 일도 없다. 자기방법으로 수렁에서 기어오르는 법도 모른 채 점점 인간이 아닌 기계의 명령으로 살아간다.
고통의 면역에 약해진 영혼들이 갈 곳을 몰라 방황하며 우는 것을 하느님께서 바라보신다면, 우리는 그야말로 아버지께 배은망덕한 인간이 되고 말 것이다. 예수님은 고통의 명수가 아닌가!
나는 생의 진정한 네비게이션은 ‘성경’이라고 생각한다. 예수라는 한 시인이 비유법으로 길을 가르쳐주고 있는데, 직설적이 아니라 어느 시인도 따를 수 없는 탁월한 비유법으로 우리들의 생의 길을 가르쳐 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몇 천 년이 지나 인간의 두뇌가 하늘을 찔러도 성경 같은 네비게이션은 나오지 못할 것이다. 정말 그렇다.
나는 생각한다. 어린 시절 길을 ‘저기!’라고 가르쳐 주신 할아버지는 예수님이었을 것이라고 말이다. 우리들 마음이 저기고, 우리들 천국이 저기에 있는 것 아닌가. 그 길은 각자 자기의 노력으로 발이 까지고, 다리를 절룩이고, 헤매고, 그리고 드디어 찾아 우렁찬 하늘의 박수소리를 듣게 하는 그 할아버지는 예수님 식으로 우리에게 길을 가르쳐 준 것이 분명하다.
“저기!” 나는 이 말이 좋다. 새 한 마리가 태어나 처음으로 날기 시작하는 그 가녀린 날개 움직임도 저기를 가고 있으며, 한 아기가 태어나 ‘앙’하고 우는 소리도 저기를 가는 첫 신호음이다.
우리들 바로 코앞에 저기가 있다. 분명히 정확하게 저기가 있다. 다만 겸허히 조심스럽게 더듬거리며, 손의, 정신의 예민한 촉수를 살려, 우리는 ‘새해’라는 새로운 시대를 모르는 길을 찾아가는 각오로 걸어가야 할 것이다. 2009년에는 우리들 길 찾기의 온도가 진하게 붉은, 그래서 눈금이 쭉 오르는 해로 높이 떠올랐으면 한다. 그래 그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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