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띠 해는 예로부터 여유와 평화의 한 해를 상징했다. 하지만 2009년 소띠 해에도 예년과 마찬가지로 여유와 평화를 기원하는 인사를 건네도 될는지?
‘몇 십 년만의 위기다’, ‘유례없는 불황이 찾아올 것이다’, ‘겨울이 가면 이번에는 빙하기가 올 것이다’ 등등 들려오는 소리는 무섭다 못해 협박 같아서, 아무에게나 덜컥 “올 한 해에도 여유와 평화를 기원합니다”라고 말했다가는 악담이 될 것만 같아서다.
“어려울수록 소처럼 끈기 있게 꾸준히 노력하면 머지않아 좋은 일이 있을 거예요”라는 말도 자칫 비현실적인 말처럼 들릴까봐 망설여진다.
연말연시를 맞아 평소에는 바쁘다는 핑계로 소홀했던 이들의 안부를 묻다가 알게 된 것은, 거의 대부분이 평화롭지 못하다는 현실이었다. 장염을 앓거나 독감으로 고생하고 있다는 이, 대장암 판정을 받았다는 이,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었다는 이, 파업 중이라는 이…. 그야말로 우울한 소식들이 아닐 수 없었다.
교회 전례력에 따라 성탄 이후 연이어 대축일을 지내면서 마음이 편치 않았던 것은 그런 까닭에서다.
복음서가 전하지 않는 ‘네 번째 동방박사’ 이야기는 ‘주님은 축제 가운데가 아니라 굶주리고 목마르거나 병든 이들 가운데 계시다’는 것을 새삼 일깨워준다. 다른 박사들과 함께 길을 떠났지만 고통에 신음하는 이들을 돌보면서 지체하느라 아기 구세주를 경배하지 못한 그에게 마침내 부활하신 주님께서 나타나시어 “너는 이미 나를 만났다” 하고 말씀하신다.
사랑을 위해 살고 사랑을 위해 돌아가신 그분과 함께라면, 눈앞에 축제가 펼쳐지지 않으면 어떠랴. 소가 걷듯 우리가 가는 길이 더디면 또 어떠랴. 그런 마음으로 우리 서로 이 세상이 주는 평화가 아닌 ‘주님의 평화’를 빌어보자.
(에밀라스·까리따스 수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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