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를 맞아 외사촌 동생으로부터 반가운 소식을 받았다. 며칠 후에 있을 종신서원식 초대장이었다.
“첫 서원보다는 종신서원 때가 더 기뻤다는 누나의 말이 자꾸만 와 닿네요. 같은 수도자의 길을 걸어가면서 늘 주님 안에서 행복했으면 좋겠네요. 와줄거죠?”
서원식은 수도원의 큰 축제인 동시에 수도자 개인에게는 봉헌의 의미를 되새겨 보는 의미 깊은 날이다. 나는 누구인가, 어디에 서 있는가, 어디로 가고 있는가 등등….
프랑스의 역사학자이며 신학자인 미셸 드 쎄르또(Michel de Certeau) 신부는 자신의 저서 「믿는다는 것의 나약함」에서 이렇게 말한다.
“봉헌생활이란 밖으로부터 정당화되는 것이 아니다. 종교·사회적인 필요에서 그 존재이유를 찾을 수 있는 것도 아니며, 관례에 순응함으로써 적응할 수 있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출생증명서’나 ‘세례증명서’가 있듯이 봉헌생활은 바로 ‘믿음증명서’와 같은 것이다.”
즉, 수도생활은 특권적인 모델이 되는 삶이 아니라는 것이다. 수도생활의 영원한 모델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하느님의 선물’이라는 정체성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수도자는 ‘선물의 상태’에 있도록 부르심 받은 것이다. 수도자는 그래서 믿음없이는 살아갈 수 없다.
하지만 하느님은 보일 듯 말 듯 한 존재이시기 때문에 수도자는 나날의 속삭임 속에 감추어진 것을 발견하는 기쁨을 맛보기도 하지만, 하느님의 침묵 안에서 수없이 넘어지고 깨지기도 한다. 그러한 수도생활은 나약한 인간의 하느님을 향한, 하느님 안에서의 모험이 아닐 수 없다.
봄을 기다리는 이 시기, 많은 수도원이 서원식을 치른다. 아름다운 모험에 목숨을 거는 젊은이들에게 하느님의 축복이 있기를 간절히 빈다.
이혜정(에밀라스.까리따스 수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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