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소서” (루카 22, 42)
신학교 입학 후 40일 쯤 지난 어느 날이었다. 달콤한 기도 중에 느닷없이 내가 신학생이라는 사실이 낯설게 느껴지면서 공포가 밀려오기 시작했다. 정말 두려웠다. ‘도대체 지금 내가 왜 신학교에 있지?’ 돌이켜 생각해 보았다.
주님께서는 내가 홀딱 반할만한 예쁜 수녀님을 내 옆에 보내시어 나를 꼬드기셨다. 거룩한 미인계(?)를 쓰신 것이다. 아뿔싸! 그 뒤로 나는 인간적인 사랑의 마음을 보이지 않는 분에 대한 인격적인 사랑의 마음으로 방향을 전환하느라 애를 많이 써야 했다.
주님은 나빴다. 그렇게 나를 부르시고, 당신의 뜻을 이루셨다.
그것이 정화(淨化)의 과정인 줄은 나중에야 알았다. 그런데 긴 여정으로 볼 때, 그것은 신호탄에 불과했다.
건강만큼은 자신하던 내가 병원에 입원하는 신세가 되었다. 이미 신부되는 것이 인생 최대의 목표가 된 나에게 그것은 커다란 걸림돌이었다. 조바심이 났다. 이러다가 신부가 못되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에 휩싸였다. 그런데 기도의 응답은 의외였다.
‘네가 신부가 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나를 믿고 내 뜻대로 사는 것이 더 중요하다!’ 온 몸에 전율이 흘렀다. 그리고 모든 것을 아버지의 뜻에 온전히 맡길 수 있었다. 정확하게 그 날 이후로 건강이 호전되기 시작했다. 부르심은 그렇게 이어졌다.
교구장 주교님이 물으셨다. “자네는 어떤 신부가 되고 싶은가?” “본당신부로 지내고 싶습니다.”
그런데 내 뜻과는 달리, 본당에는 보좌신부 때 잠깐 있었을 뿐 사회사목에 이어 장애인사목을 하고 있다. 꼭 필요한 사목이라 자청하기도 했지만 당분간 본당신부로 지내기는 틀렸다. 늘 이런 식이다. 나도 내 뜻이 있지만 결국은 주님 뜻대로 이루어지고 만다.
물론 그 안에 얼마나 큰 기쁨이 있는지 모른다. 그렇지만 난 여전히 모토를 이런 것으로 했으면 어땠을까 상상한다. “나는 사제들에게 기름진 것을 실컷 먹이고….”(예레 31,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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