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운 날씨에 다들 무고하신 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작년 휴가 때 가톨릭신문을 통해서 도움을 받은 박 프란치스카 수녀입니다.
휴가를 마치고 돌아가면서 즉시 감사의 인사를 드려야지 하면서 이렇게 1년이란 시간이 지나갔습니다.
2008년은 그저 너무 바쁘게 지낸 느낌이 듭니다.
어느 날 이곳에서 오래 선교하신 신부님 한 분에게 이곳에서는 왜 이렇게 시간이 빨리 지나가는지 모르겠다고 했더니, 신부님께서 이야기하시기를 계절이 없어서 시간이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른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계절이 없어서 좀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을까 싶었답니다.
2008년을 마무리하면서 저는 이곳에서 3년간 함께 일한 마을 봉사자 13명과 함께 2박 3일간 베네딕도 수도원에서 지냈답니다. 이 기간을 통해, 우리가 늘 어렵게 살긴 하지만 어떻게 하면 우리의 삶을 감사드릴 수 있을까하는 방향에 대해 이야기 나누고 전반적인 모임 준비를 하였답니다.
3년간의 감사 내용에서 대부분 봉사자들이 자신들이 제 덕분에 이젠 블릴리의 궤양에 대해서 전문가가 되었고, 마을에서 이름도 모르고 지내던 사람들이 지금은 마을의 추장에 가까운 대접을 하고 찾아온다면서, 무엇보다도 자신들이 사람들에게 건강에 대해 봉사하는 사람으로 불렸음에 대해서 감사했습니다.
베네딕도 수녀회 수녀님 한 분께서는 이들의 폐쇄된 삶에 대해서 이야기해 주었는데, 이런 폐쇄된 삶 안에서 어떻게 복음을 전파하고 있는지에 대해 듣고 많이 감동했답니다. 그리고 각자 자신의 삶의 자리에서 봉사하는 자세로 더 자리매김해야 한다는 것을 많이 느꼈습니다.
그 수녀님은 아무리 말을 해도 점쟁이를 찾아가는 환자들을 보면 답답하고 속상하다고 하면서도, 환자들이 완치되어 기뻐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간 쌓였던 힘듦이나 피곤함을 잊는다고 말씀하셨답니다.
저도 나름대로 때로는 힘들었지만 조금씩 변화되어 가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힘을 얻었는데 이번 모임을 통해서 이러한 시간들이 결코 헛된 것이 아니었음을 다시 한 번 많이 느꼈답니다.
나름 뿌듯한 순간들도 많았습니다. 특히 2007년에 14명의 봉사자 중 한 명을 부르키나 파소에 있는 간호 보조 양성 학교에 2년간 입학을 시켰던 일이 기억에 남네요. 그리고 읽지도 쓰지도 못했던 봉사자가 자신의 이름을 직접 쓰고, 매월 자신의 치료 상황을 보고하는 보고서 작성까지 하는 걸 보았을 때 뿌듯했답니다.
2008년에는 전체 6개의 마을 진료소에서 1월에서 10월까지 9,127명의 상처 치료를 했고, 새로운 환자가 88명 생겼으며 전체 등록 환자 169명 중 항생제 치료요법으로 84명을 치료하였습니다. 비록 6곳에 간이 진료소를 두었어도 그곳까지 멀어서 상처로 인해 오지 못하는 환자들도 있었고, 마을 봉사자들 역시 자전거로 매일 그 환자들을 방문 치료하기란 쉽지 않아서 못한 경우도 많았답니다.
또한 2008년 한 해동안 이곳에서 40킬로미터 이상 떨어진 입원시설에 입원을 시킨 환자만도 10명이 넘는답니다. 이곳에 병원이 없기 때문이지요. 2009년에는 오토바이를 이용해 거동 못하는 환자들의 이동 치료를 계획하고 있어요. 하지만 오토바이를 사는 것도 비용이지만, 길이 워낙 좋지 않아서 계속되는 수리비와 기름값을 생각하면서 어떻게 해야 하나 조금은 고심 중에 있답니다.
이곳에서는 병명을 모르거나 하면 귀신이 원인이라고 생각을 하고 점장이를 찾아가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병이 심해지면 그때서야 제게 오는 경우가 많고, 그럴 때는 큰 병원을 가도 이미 늦은 때가 많답니다.
가톨릭신문을 통해서 저희에게 도움을 주신 모든 은인님들. 이곳에는 의료품이 수입되어 오기 때문에 많이 비싸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한 해는 듬뿍 내어주신 도움 덕분에 별 어려움없이 한 해를 잘 보낼 수 있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저를 생명의 은인이라고 칭하며 감사인사를 건넬 때가 많습니다. 그럴 때마다 이것은 제가 들어야 할 인사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저희에게 도움 주신 분들에게 돌아가야 할 인사를 가로챈 것 같아 송구스럽습니다.
새해에도 은인님들 한 분 한 분 가정에 하느님의 사랑이 함께 하시길 바랍니다. 은혜로운 한 해가 되시길 기원합니다.
코트디브와르에서
박 프란치스코 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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