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 ‘정년’(停年)이란 제도가 있다는 것에 대해, 정년이 가까워오면서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젊은 날에는 죽을 때까지 교단에서 열정을 잃지 않고 가르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마음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점점 강의하기가 싫어졌다.
특히 나이차가 많이 나는 어린 학생들을 앉혀 놓고 ‘시는 무엇이다’, ‘문학이란 무엇이다’하며 강의를 하려니 재미가 없었다. 인생을 좀 살아본 이들에게 강의하는 것은 짜릿한 쾌감까지 일어나는 법이다.
그러나 어린 학생들로 가득한 강의실을 들어가자니 어느 때부턴가 마음이 식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정년이 왜 필요한지를 깨닫게 됐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아주 당연하고도 기쁘게 받아들였고, 그날이 오면 홀가분하게 강단을 떠날 수 있을 것이라고 장담했었다.
이래서 사람은 뭐든 단정지을 수 없나 보다. 지난해 12월, 나는 마지막 강의를 했다. 강의실에 들어서면서 마지막 강의를 멋지게 끝내고, 학생들을 감동시키며, 후련한 마음으로 나오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는 강의 중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그 눈물의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학생들에게 더 좋은 스승이 되지 못하고, 더 좋은 강의를 하지 못한 자책감이었을까. 단연코 그건 아니다.
그것은 분명 개인적 감상 탓이다. 내가 교수라는 직업으로 강단에 서게 된 것은 절대로 나 혼자만의 자질로서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나는 마흔에 눈물로 대학원 석사를 졸업하고, 그로부터 10년 후인 오십에 박사학위를 받아 한 지방대학의 교수가 됐다.
내가 교수를 하게 된 것은 온전히 ‘기도의 힘’이었고, 그 어설픈 기도를 들어 주신 한 분의 힘으로 나는 교수 직함을 얻게 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기도의 힘’을 잘 안다.
‘교수’라는 직업은 여러 가지로 부족한 내가 도달할 수 없는 극지였다. 그러나 나는 내가 먹은 밥, 아니 쌀알수보다 더 많이 ‘주님, 저를 쓸모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 주십시오’라고 기도했고, 그 기도의 힘으로 불가능의 한 영역에 도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기도의 힘 덕분에 나는 17년의 교수생활을 무사히 마감할 수 있었고, 결국 마지막 강의에서 감정이 북받쳐 올라 눈물을 흘리게 된 것이다.
나도 당황했고, 학생들도 당황했다. 한동안 우리들 사이에는 침묵이 흘렀다. 나는 눈물을 참느라 입술을 물었지만, 내 두 볼 위로 굵은 눈물이 그치지 않고 흘렀다. 도무지 이게 뭐람, 이것은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나 이거 무슨 망신이니?”
내가 면목 없는 듯 한마디 겨우 건네자, 학생들이 뜨거운 박수를 보내줬다. 나는 계속해서 울었고, 그들은 젖은 박수를 그치지 않았다. 그리고 나의 마지막 강의는 막을 내렸다.
학생들이 준비한 꽃다발을 받고, 축하 케이크를 잘랐다. 마지막으로 자작시 낭송을 하고 강의실을 나서며, 학생들에게 오월 한낮의 모란 같은 웃음을 보냈다.
어떤 말도 의미가 없었다. 울고, 웃고. 그것이 그 마지막 강의에서 내가 학생들과 주고받은 마지막 표현이었다. 박수소리는 아직 그치지 않았다. 박수소리는 내 비밀통장에 수북하게 저축됐고, 앞으로 내가 외롭거나 어려울 때 그 박수소리와 웃음소리들을 조금씩 통장에서 꺼내 맛있게 씹어 먹을 것이다.
마침 졸업한 지 5년이나 지난 제자 요순이가 꽃다발을 들고 내 마지막 강의를 지켜줘 조금 더 위로가 됐다. 제자와 함께 큰 가방을 열고 연구실을, 집기들을 정리하며, 오랜 시간 내 방이었던 연구실을 쓰다듬었다.
책을 옮길 이사 날짜를 정하고, 집기들을 들고 방을 나서며 나는 순간 어지러웠다. 무언가 묘한 허전함이 내 가슴을 아리게 했다. 그러나 나는 생각했다. ‘방 하나 비우는 일이 뭐 그리 대수인가. 언젠가는 이 우주도 비워질 날이 올 것이니….’
나는 스스로 말한다. 오늘 하루 주어진 순간마다 최선을 다하며 사는 일이야말로 나를 만들어 주신 하느님께 감사하는 일이라고. 그리고 나의 진정한 마지막 강의는 아직도 준비 중이며, 그것이 언제일지는 다만 하느님만이 아실 거라고.
그래. 나의 마지막 강의는 준비 중이다. 그리고 나는 다시 내게 말한다. 아, 나의 삶은 지금 찬란하고 눈부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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