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후면 새롭게 한 해가 시작되는 설날이다. 모처럼 부모 형제가 한 자리에 모여 조상의 뜻을 기리며 따스한 정을 나누는 설날 풍경을 떠올리면 벌써부터 마음이 푸근해진다. 고향 가는 길을 ‘귀성 전쟁’이라고 하면서도 늘 반복되는 민족의 대이동에 나서는 것은 그 길이 가족이라는 공동체 속에서 북돋워진 마음으로 새로운 희망을 찾아나갈 수 있는 힘을 얻게 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새로운 희망과 기쁨으로 맞아야 할 설날이 올해는 그렇지 못하다. 나라 안팎에서 이어지고 있는 우울한 소식들은 그렇지 않아도 갖은 어려움으로 쳐진 어깨를 더욱 움츠러들게 하고 있다.
나라 안으로는 끝 간 데 없이 이어지는 경제위기 속에서 쉬 희망을 찾지 못하고 힘겨워하는 이들이 늘어만 가고 있다.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한 실업률과 취업난 등으로 모처럼의 귀향마저 포기하는 사람들이 생겨나는가 하면, 이번 겨울 넘기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꼽는 이들이 적잖을 정도로 이중 삼중의 어려움 속에서 고통받는 이들의 모습이 도처에 널려 있다.
밖으로는 지난해 세밑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침공으로 비롯된 중동지역에서의 분쟁으로 280명에 육박하는 어린이를 포함한 900명 가까운 팔레스타인인들이 새해 새 하늘이 주는 기쁨도 누리지 못하고 목숨을 앗기는 등 세계 곳곳이 피로 얼룩지고 있다.
하지만 이런 가운데서도 신앙인들은 희망을 잃지 않고, 나아가 가난과 아픔 속에 숨죽이고 있는 이들과 희망을 나눌 수 있는 사랑의 전령이 되어야 할 것이다.
예수님께서 몸소 그러하셨듯이 힘겨운 삶을 이어가고 있는 가난한 이들을 찾아가 주님께서 주시는 희망을 들려주고, 절망이 희망의 또 다른 모습임을, 절망조차도 힘이 될 수 있음을 이야기하며 지상에서의 여정을 함께 걸어가는 것이 참된 그리스도인의 자세이기 때문이다.
아울러 설은 하느님께서 가족과 공동체에 베풀어주신 은혜에 감사하며 사랑을 나누는 안식의 장이 되어야 한다. 이 안식이 주님께서 사랑하시는 모든 이의 것임은 물론이다.
이러하기에 명절은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을 한 번 더 둘러보는 사랑 실천의 시간이 되어야 한다. 조금만 주위를 세심하게 둘러보면 홀몸노인, 소년소녀 가장, 사회복지시설 등에서 외로이 명절을 지내야 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이들에게 한 발 더 다가서는 사랑의 나눔이 바로 그리스도인임을 드러내는 길이며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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