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을 며칠 앞둔 날, 신부님께서 주신 책 한권, 뜻밖에도 대주교님이 쓰신 책이었다.
비매품인 이 책이 내 손에 들어온 것이 감격스러웠다. 책을 읽으면서 대주교님의 자애로우신 모습을 뵙는 듯, 그 목소리를 듣는 듯했다. 병상록 그리고 신앙고백으로 이어지는 글 속에서는 대주교님의 하느님 사랑이 절절이 배어났다.
가톨릭청년회를 통해 일찍부터 보여주신 리더십, 군대의 노병생활에서 보여주신 겸손함, 젊은 시절 술을 즐기시던 호탕함…. 책을 통해 알게 된 대주교님의 모습들이다.
실수로 벌어진 그리 크지 않은, 그러나 아찔한 사고, 부상에도 당황하지 않으시고 부상자를 대하는 동·서양의 사고의 차이를 생각하시는 모습은 어쩌면 조금 엉뚱하시다는 생각이 들고 웃음까지 나왔다. 근엄하신 사제의 모습만 입력된 나로서는 도저히 상상이 되지 않는….
사제이기 이전에 한 ‘사람’으로서의 모습을 곳곳에서 발견하면서 내가 생각치도 못했던 ‘재미있는 대주교님’이라는 생각도 들고 퍽 가깝게 느껴졌다.
하느님 사랑, 그리고 애국심까지 내비치는 귀국 후의 사제생활, 젊은 주교로서의 어려움을 세차지도 않고 소리내지도 않고 흐르는 가느다란 냇물을 연상케하는 필력으로 담담히 그려내시며 읽는 이를 흡입시키신다.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서 보여주신 의연한 자세는 누가 감히 흉내낼 수 있을까 싶다. 뵐 때 느끼는 그대로의 모습이 글 속에서 묻어난다. 힘들고 어려운 투병생활을 마치 남의 일을 서술하듯 그려내시며 죽음까지 감사히 받아들일 자세로 맞서시는 의연함은 대주교님의 외형과 걸맞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목장의 무거움을 온 몸으로 느끼시고 그래서 휴식이 필요하신 대주교님께 하느님은 특별한 방법으로 쉬게 해 주신 게 아닐까싶다. 병상의 휴식이 바로 그것이라 생각되었다. 회복기에 맞으신 성삼일, 신학생들과의 피정에서는 힘주어 신앙고백을 들려주신다. 마더 테레사의 사랑을 묵상하고, 예수님의 죽음을 묵상하고…. 한 환자로서, 한 사제로서, 한 사람으로서….
여러 모습을 보여주는 ‘저녁 노을에 햇살이’ 내게는 ‘창으로 미쳐드는 햇살’로 와 닿는다. 오늘도 저녁 노을에 햇살이 제 가슴을 비추고 있다고 대주교님께 전해드리고 싶다.
대주교님, 회복되셔서 감사합니다. 건강관리 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글 써 주셔서 더욱 감사합니다.
손태자(서울 마장동본당·율리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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