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형제 중 막내아들인 우리 아버지께서 세살 때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할아버지는 새 장가를 들라는 주변의 권고를 뿌리치고 오직 삼형제를 위해 여든이 넘는 나이를 혼자 사신 분이었다. 그런 할아버지께서는 나에게도 많은 기억을 남겨주셨다. 50년 전 어느 날, 성경을 읽고 계신 할아버지께 어린 내가 질문을 드렸다.
“할아버지는 예수님을 믿지도 않으시면서 왜 성경을 읽으세요?” 그랬더니 할아버지께서는 “예수씨와 공자씨는 성현이시며, 성현들의 말씀을 자주 읽으면 배울 점이 많다”고 대답하셨다.
그리곤 나를 옆에 앉히시고 “예수씨는 ‘왼 뺨을 치면 오른 뺨을 내어주고, 공자씨는 친구가 오 리를 가자하면 십 리를 함께 같이 가주는 것이 참된 벗이다”라고 말씀해주셨다며 나도 이런 친구가 되어야 한다고 이르셨다. 할아버지의 ‘예수씨’는 참 인상적인 표현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당시 우리 집엔 아침식사 때면 문전걸식하는 사람들이 많이 찾아오곤 했다. 할아버지께서는 항상 대문을 잠그거나 닫지도 못하게 하셨고, 어떤 누구라도 들어오는 사람의 뒷모습이 부끄럽지 않도록 그들의 청을 거절하지 말아야 한다고 당부하셨다.
또 자신의 밥상에서 가장 좋은 반찬은 꼭 걸인의 몫으로 남겨두셨고, 아무리 원수 같은 사람이라도 나를 찾아오는 경우에는 절대로 그냥 돌려보내선 안 된다고 가르치셨다.
그런 할아버지가 임종을 앞두고 계실 때 세례 받기를 권고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할아버지는 “내 팔십 평생을 내 중심으로 살았는데 이제 와 하느님께 용서를 청하는 것은 염치없는 일이다”라고 하셨다. 그 후 할아버지는 병상에서 일어나셔서 직접 교리반에 참여하시고 세례를 받으셨다.
할아버지와 함께 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어린 시절 누구와 살고 어떤 경험을 가졌는 지가 오늘을 사는데 얼마나 큰 도움이 되며 또 내일을 사는 교훈이 되는 지 새삼 절감한다.
정찬남(모니카·한국평생교육사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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