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내가 하자는 대로 하여라”(마태 3, 15)
신학교 생활을 마무리하는 마지막 학기 때였다. 신학교는 매 학기를 피정으로 시작하는데 나는 신학교에서의 마지막 피정을 잘해보겠다는 생각에 ‘사제란 누구인가?’를 피정 주제로 선정했다.
3개월 후면 사제서품이기에 ‘사제란 누구인가?’에 대해서 다시 한 번 깊이 성찰하는 것도 좋을 것 같아서였다. 피정이 시작됐다. 그런데 피정시간이 흐를수록 혼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내가 과연 사제가 될 수 있을까? 사제가 될 만한 자격이 나에게 있을까?’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무엇보다도 하느님 대전에서 사제로 심판 받아야 한다는 사실이 너무나 두려웠다. 극심한 혼란과 두려움 속에서 방황하는 가운데 피정은 끝나고 말았다. 나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수업도, 성무일도도, 미사도…. 그래서 노트에 적기 시작했다.
자신을 들여다보면서 내가 사제가 될 수 있는 이유와 없는 이유를 구분해 보았다. 결과는 참혹했다. 사제가 되어서는 안 될 이유는 많은데 사제가 될 수 있는 이유는 찾아볼 수 없었다.
한 달간 고민 끝에 영성지도 신부님을 찾아간 나는 사제직을 포기하겠다고 통보했고 신부님은 나갈 때 나가더라도 일주일만 더 생각해 보라고 하셨다. 영성지도 신부님께 말씀드리니 홀가분했다.
나는 홀가분한 마음으로 책상에 앉아 성경을 펼쳤다. 그 때 내 눈에 들어온 한 구절이 있었다. ‘지금은 내가 하자는 대로 하여라’는 말씀이었다. 다른 글귀는 보이지 않았다. 그 순간 심장이 멈추는 것 같았다. 그리고 깨달았다.
아! 내가 참으로 교만했구나. 자격의 문제가 아니라 사랑으로의 부르심인데. 그래서 나는 사랑의 부르심에
응답할 수 있었고 사제로 살아가는 은총을 그분께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주님과 매사에 씨름하고 있는 나 자신을 본다.
매 순간 나는 이렇게 하고 싶은데 주님은 저렇게 하라고 하신다. 그 때마다 ‘지금은 내가 하자는 대로 하여라’는 주님의 말씀을 상기하면서 그 분의 뜻에 순명하는 사제가 되려고 노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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