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고향 친구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오랜만의 연락이라 반가운 마음에 안부를 물었더니 회사가 어려워지면서 직장을 잃었다고 하는 게 아닌가. 최근 몇 년 간 경제적으로 힘들어진데다 부부 불화까지 겹쳐 마음 고생이 심했다고 말했다. 그래도 살아야 하겠기에 부인은 보험설계사로, 이 친구는 낮엔 자영업하는 선배를 돕고, 밤엔 대리운전까지 뛰며 고달픈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아직 한참 일하며 가족들과 행복을 만들어가야 할 시기에 너무나 혹독한 시련을 겪고 있었다. 이 친구의 예처럼 실직과 경제적 어려움으로 삶의 의욕도 희망도 꺾여 버리고 가정마저 풍비박산 난 경우가 증가하고 있다. 돈이 삶에 분명 전부는 아닐텐데 전부인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씁쓸하다.
오늘날 우리 사회가 모든 것을 돈으로 계산한다는 자조적인 얘기도 나돈다. 아이들에게 선물을 사 줘도 “이거 얼마짜리야?”하고 묻는다거나, 부부간에도 남편이 아내를 사랑하는 기준이 몇 캐럿짜리 다이아몬드 반지를 선물하는가에 따라 정해진다는 것이다. 사랑도 돈으로 계산하는 세상에 산다는 의미다.
중국 명말(明末) 홍자성(洪自誠)의 어록(語錄)으로 생활철학이 담긴 채근담(菜根譚)을 보면 “지족자(知足者) 여갱(黎羹)도 지어고량(旨於膏梁)하고 포포(布袍)는 난어호학(煖於狐 ) 하니 편민(編民)도 불양왕공(不讓王公)”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곧 만족할 줄 아는 자는 명아줏국(맛없고 거친 음식을 일컫는 말)도 고기와 쌀밥보다 맛있게 여기고, 베로 만든 두루마기도 털옷보다 따뜻하게 여기니, 평민이면서도 왕공을 부러워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행복이 물질의 잣대로 평가된다면 요즘 사람들이 100년 전 사람에 비해 훨씬 더 행복해야 한다. 진정 그러한가. 인생을 지혜롭게 사는 사람은 결코 재물이나 명예를 행복의 절대 요소로 두지 않는다.
남편 혹은 아내가 직장을 잃었거나, 명예퇴직을 하게 되면 당사자는 자괴감을 느끼게 되고 어떻게든 문제를 풀어보겠다고 서두르다 남의 유혹에 빠지기도 쉽다.
이럴 때 “당신! 그동안 수고했어요. 오랜 세월, 하루도 쉬지 않고 일했으니 마음을 좀 편히 가져요. 산 입에 거미줄 치겠어요? 우리가 아껴 먹고, 아껴 입고, 아껴 쓰면 되잖아요”라고 건네는 말 한마디로 인생의 새로운 희망과 위안을 얻게 되지 않을까.
지금 이 시간에도 수많은 이들이 실직으로 내몰리며 참담한 상황에 직면해 있다. 이는 비단 한 사람만의 아픔이 아니라 많은 이들이 함께 힘들어 하며 겪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이다. 지금 이들에겐 하루빨리 새 직장을 구해 생활의 안정을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마음의 상처를 딛고 일어설 수 있도록 격려하고 희망을 주는 것이 더 절실하다. 이런 기회에 바쁘게 살며 정작 잊고 지냈던 ‘가족’과 ‘행복’의 의미를 되돌아보았으면 한다. 더 나은 삶을 위한다는 명목아래 서로를 돌볼 틈 없이 정신없이 살았던 지난날들이 우리의 진정한 ‘행복’을 위한 삶이었는지.
이런 어려운 시기가 오히려 부부간에 화합하고 가족의 소중함을 알아가는 시간으로 전화위복이 되었으면 한다. 언제나 행복은 내 마음 속에 있음을 자각하고 깊이 새기는 한해가 되길 바라고 또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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