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이 열린다. 어둠이 서서히 걷히고 흐릿한 빛이 새어들어 온다. 여명의 새벽이 창을 밝히면 나는 가슴이 떨린다. 여명의 빛은 영성 그 자체여서 좋다. 종교적으로 두 손을 모으고 싶은 간절함이 있다.
그것은 그냥 빛이 아니다. 그분의 ‘말씀’ 같아서 귀를 기울이고 들어야 할 것 같고, 정말 은밀한 ‘하늘의 편지’ 같아서 경건히 무릎 꿇고 독서를 해야 할 것 같다. 그렇게 빛이 내게로 다가온다. 그 빛을 읽을 수 있다면, 몇 천권의 진지한 독서가 되지 않겠는가. 그래, 그렇지 아니한가?
나는 그런 여명의 시간에 세수를 한다거나, 신문을 보거나, 무엇을 먹는다거나 하지 않는다. 그때는 가만히 묵상 외에는 더 할 일이 없다. 아니, 다른 무엇을 하면 안 될 것 같아 나는 그냥 가만히 앉아 있거나 새벽 창을 보며 서 있는다. 스스로 금기를 만들어 더욱 그 시간을 이유있고 의미있게 사랑하는 것이다. 그때는 의심의 여지없이 행복한 시간이 된다.
사실 내게는 그것만으로도 벅차다. 저 빛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저 어둠은 어디로 가는 것일까. 그리고 나는 지금 어디에 서 있는 것일까. 그 여명의 빛을 바라본다. 맑은 마음으로 그 빛을 받아들인다. 그럴 때면 내 몸과 마음은 세수를 한 것보다 더 맑아져 있음을 느낀다.
그런 시간이야말로 살아있음의 축복이다. 빛의 소리, 그리고 어둠이 밀려가는 소리를 듣는 순간도 그 시간이다. 탁해져버려 스스로의 소리도 잘 듣지 못하는 기형의 몸도 그 시간만큼은 저절로 가슴이 탁 터져 내 소리를 명징하게 들을 수 있다. 이런 싱그러운 시간은 이 순간 말고는 없을 것 같다. 이 생각을 하면 가슴이 떨린다. 하느님이 생명과 함께 주신 모든 시간은 눈부시다. 그 생각을 하는 시간이 내겐 축복의 시간이다.
깊은 밤 자정, 혹은 새벽 두시를 사랑한다는 사람들이 있다. 밤을 꼬박 ‘지새우는 일’ 말이다. 물론 그것도 좋다. 점점 깊어가는 어둠 속에서 불빛을 환하게 내리고 무엇인가 작업을 한다면, 몰입의 덤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좋을 것이다.
해가 기울고, 노을이 지나고, 막 밤으로 접어드는 저녁시간이 울고 싶을 정도로 너무 좋다는 사람들도 있다. 그래, 좋다. 나도 좋다.
그 시간이 오면 왠지 벌벌 떨려 어디로 갈지도 모르고 거리에서 배회하던 젊은 시절도 있었다. 꼭 그 시간에 죽고 싶을 때가 있었다. 그 시간을 극복 못해 바람 부는 거리의 공중전화로 달려가 절대로 전화하면 안 되는 남자에게 울면서 전화를 걸었던 젊은 날이 있었다. 그리고 입술을 깨물며 후회했던 젊은 날이 있었다.
정말 하지 말았어야 하는 그런 금기마저 깨트려 버려야 했던 붉은 노을이 꽃피는 저녁들.
이렇게 아름다운 시간에 눈물을 흘리며 자신의 운명을 바꿔버리는 사람들…. 지금도 있을까.
나 자신과 하나의 약속을 한다. 하루가 다시 나에게 주어지고 나는 살아있다. 나의 시간은 아침에 머물러 있고, 나는 오늘을 무언가 의미 있게 살아야 한다. 스스로 약속을 던진다. 그래. 스스로 대답한다. 대답하는 내 목소리의 울림이 청명하다.
이제 다시 시작하는 것이다. 늘 미루어 왔던 묵주기도도 새롭게 시작하자. 적어도 묵주기도를 바치는 동안은 내가 이 세상에서 책임과 성의를 다하며 감사할 줄 아는 시간이다. 혹은 누군가에 힘을 주는 문자 메시지라도 보내자.
주어진 시간에게 대접만 잘 하더라도 하나의 책임을 완수하는 사람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이렇게 늘 시간을 업고 달래며 키워도, 우리는 시간의 육아에 서툴러 절절 맨다.
다시 새해다. 우리 모두 ‘이제는’이란 구호를 크게 외칠 때다.
우리에게 주어진 새해 새 시간을 껴안고 사랑하며 열렬히 열애하듯 살아가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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