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복무 마치고 복학 준비 중인 한 신학생을 최근 만났다. 솔직하고 당차다.
“당신이 부럽습니다. 단란한 가정을 가진 분을 만날 때마다 부럽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자주 이런 생각을 해 봅니다. 한 여자와 사랑을 하고, 또 평생 동안 그 사랑을 키우며 살고 싶다는….”
18세 이상 관람가 영화를 볼 때 보다, 단란한 가정의 행복이 잔잔하게 묻어나는 전체 관람가 시트콤에서 오히려 더 큰 유혹을 받는다고 했다. 젊은 연인보다는 중년 부부의 편안함에서 더 심한 갈등을 느낀다고 했다.
같은 사안을 두고 이렇게 다른 생각을 할 수 있나…. 그래서 의자를 바짝 끌어 당겨 다가가 앉으며 말했다.
“당신이 부럽습니다. 자신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사제를 만날 때마다 부럽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자주 이런 생각을 해 봅니다. 절대자와 사랑을 하고, 또 평생 동안 그 사랑을 키우며 살고 싶다는….”
범접하기 힘든 성자(聖者)가 아닌, 단란한 성당에서 살아가는 본당 사제의 모습에서 오히려 더 큰 부러움을 느낀다고 했다. 젊은 사제의 왕성한 혈기보다는 중년 사제의 넉넉한 ‘허허’웃음 소리에서 더 심한 영적 갈증을 느낀다고 했다.
사제는 혼자 있고 싶을 때 혼자 있을 수 있다. 공부하고 싶으면 공부할 수 있고, 본당을 확 바꿔 놓고 싶으면 온 정열을 바쳐 그렇게 할 수 있다. 조용한 곳으로 떠나 기도하고 싶으면 기도하면 되고, 특수사목 분야에 남다른 관심이 있다면 그렇게 하면 된다. 나만의 ‘생각대로 T’(thanks)다.
그래서 톨스토이(Lev Tolstoy, 1828~1910)는 1890년에 발표한 중편 소설 「크로이처 소나타」에서 결혼의 불협화음을 질타하면서 독신의 미덕을 열렬히 찬양한다.
물론 가정생활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다. 가정의 모든 구성원들은 참 행복, 참 사랑 실현을 위해 ‘노력’해야 하고, 또 그렇게 살아야 한다. 문제는 ‘노력’, 여기에 있다. 행복한 가정은 손만 뻗으면 저절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사제의 길은 한없이 험난하게만 보고, 가정생활은 전적으로 안락하게 보는 그런 식의 착각은 곤란하다. 사제의 길도, 결혼 생활도 똑같은 양의 땀이 필요하다. 같은 비중으로 의미가 있고, 똑같이 힘들고, 그렇게 일궈내는 성취도 함께 아름답다.
그렇다면 곁눈질할 필요가 있을까. 아름다운 아내를 두고 옆집 여자를 넘볼 필요가 있을까. ‘내가 지금 여기서’ 걷는 길이 가장 아름답다.
진리와 신앙을 위해 목숨까지도 바칠 수 있는 신앙 젊은이들의 열정이 아쉽다. 젊음은 힘들다고 주저앉지 않는다. 하나를 따르고, 그 하나를 성취하겠다는 열정만 있으면 된다. 물론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걱정은 필요없다. 일을 주는 사람은 그 일을 해낼 힘도 주신다.
어두운 우물 바닥에 오래 앉아 있다 보면 자신에게 내려진 구원의 밧줄을 뱀으로 착각할 수 있다. 다른 사람들은 밧줄이 내려진 그 사람을 부러운 눈으로 쳐다보고 있는데, 정작 당사자는 밧줄이 무서워 잡지 않고 있다.
지난 5일 서울대교구 사제평의회에서 사제성소 문제가 도마 위에 올랐다. 성소 급감이 그 이유다. 더 이상 청소년들이 사제의 길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많은 청소년, 청년들이 고귀한 성직에 몸을 던졌으면 좋겠다.
예술과 문학, 과학, 인류애, 신앙 등을 위해 인생을 건 사람들의 이야기는 감동을 준다. 그들이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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