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월 20일, 서울 한복판에 위치한 건물 옥상에서 점거농성을 벌이던 세입자, 전국철거민연합회 회원들과 경찰특공대원, 용역 직원 사이에 마치 도시 게릴라전을 연상시키는 충돌이 벌어졌다. 소위 ‘용산 참사’라 불리는 비극적인 사건이다. 문명의 세기에 살고 있다고 자부하는 우리가 또 다시 야만의 한 페이지를 기록하고 말았다.
작년 말, 서울 모처의 재개발 예정지에 포함되어 있던 성당의 주임 신부님을 만나뵌 일이 있다. 성당 주변 약간을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집마다 철거 대상지라는 붉은 테이프가 휘감겨 있어 보기에도 흉흉했다. 황폐해진 골목길을 다니기조차 무섭다는 신자들의 요청으로 3월까지는 새벽 미사가 오전 10시 미사로 대체되었다고 한다. 재개발이 신앙생활조차 제약하는구나 싶어 씁쓸한 기분이 들었는데, 신부님께서는 살던 동네에서 쫓겨나 외곽으로 밀려나는 사람들이 허다한 마당에 미사 시간 바꾸는 것쯤은 일도 아니며, 억울한 처지를 호소하는 할머니 신자들의 탄식을 들어 주노라면 하루 해가 금방 저문다고도 말씀하셨다.
재개발 사업이 내세우는 명분의 핵심은 재개발이 가져다주는 경제성과 도시 미관의 새로운 정비이다. 용산의 경우만 보더라도, 재개발 사업을 통해 상대적으로 낙후된 외관을 정비하여 40층 규모의 주상복합아파트가 들어서게 되고, 경제적 효과는 그 무엇에도 비할 수 없다는 논리를 내세운다.
그러나 재개발의 이면에 도사린 것은 검은 빛 현실일 뿐이다. 도시정비사업 관련 법률은 도시개발법과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도시재정비 촉진을 위한 특별법, 토지보상법 등, 일반인들로는 잘 이해할 수도 없는 복잡한 법체계가 서민의 발목을 잡기 일쑤다. 복잡한 법체계의 틈바구니 속에서 엄청난 불법행위가 저질러지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재개발이 시작되면 주택이나 토지 소유자에게는 유리할 것처럼 보이지만, 다 그런 것은 아니다. 소유한 주택면적이 작으면 신규주택을 받지 못하고, 감정평가액만 손에 쥐고 정든 보금자리를 떠나야 한다. 재개발에 반대하는 주민 역시 강제로 퇴거시킨다. 조합원들도 엄청난 건축비를 부담하고, 완공 전까지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갔다 와야 하며, 공사장이 되어버린 학교를 떠나 먼 학교에 등교해야 하는 학생들의 불편은 말할 것도 없다.
세입자들의 상황은 한층 열악할 수밖에 없다. 일부 세입자에게만 임대주택입주권이 주어지고, 많은 세입자들이 개발 예정지로부터 쫓겨난다. 통계에 의하면 서울시내 25개 뉴타운 지역에 지정 당시 31만 가구가 살고 있었는데, 재개발로 인해 대부분 소형이던 주택이 모두 사라지고, 세입자들은 사업자들의 돈의 힘에 짓눌려 서울 변두리의 동네로 이전하였다고 한다.
세입자들은 대개 앞에서 말한 법률의 이름조차 들어본 적이 없는, 억울한 일을 당하고도 제대로 호소조차 하지 못하는 순진한 사람들이다. 일부 언론의 보도처럼 보상을 노리는 전문꾼들이 아니라, 철거를 당하여 갈 곳 없어 길거리에 천막치고 살을 에는 한겨울 추위와 찌는 폭염을 견디며 지내는 사람들이다.
재개발사업은 왜 이렇게 폭력적일까? 그 이유는 재개발 사업을 평화적으로 진행해서는 경제적 이익을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UN 사회권 규약위원회는 ‘퇴거당하는 사람들이 원치 않을 경우 겨울철이나 악천후에는 퇴거를 수행해선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겨울철에 강제철거를 강행한 것 역시 결코 앞의 이유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이유야 어떻든 용산 참사는 재개발 사업과정에서 개발이익만을 추구하다가 사람의 목숨까지 희생된 너무나 비참하고 안타까운 사건이자, 생명을 금전으로 환산하는 시류의 단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우리는 지난 총선에서도 재개발이라는 화두를 내세워 지역 민심을 사로잡으려는 정치권과 이에 편승한 건설시공사의 욕망을 잘 기억하고 있다. 재개발의 확대판인 한반도 대운하 사업이 불황의 늪에 빠진 한국경제를 살리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인 듯 오도하는 논리가 여전히 건재하다는 사실도 주지하고 있다.
대한민국 헌법 제35조는 “모든 국민은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할 권리를 가지며, 국가는 주택개발정책 등을 통하여 모든 국민이 쾌적한 주거생활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경제 제일주의가 판을 치는 세상에서 “사람은 빵만으로 살지 않는다(루카 4, 4)”는 예수님의 말씀을 되새기면서, 더불어 사는 세상을 위해 교회와 그 구성원들 각자가 어떤 노력을 해야할 지 구체적으로 고민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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