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살아가는 현대가 고대나 중세보다 ‘확실히’ 나은 사회일까. 갑자기 이런 물음을 떠올리게 되는 것은 ‘무지’ ‘암흑’ 등으로 덧칠해진 고대나 중세 때에나 볼 수 있었음직한 일들이 일상에서 너무나도 버젓이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현대가 과거보다 조금이라도 나은 사회라고 한다면 그 첫째 이유는 바로 인권이라는 개념이 널리 받아들여지고 또 그것을 존중하는 게 ‘문화’의 척도가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나라 가운데 선진국이라고 하는 사회에서 자칭 ‘문화인’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인권은 공기와도 같다. 선진국에 대척되는 ‘후진국’이나 ‘미개 사회’ 등으로 일컬어지는 세계는 이른바 인권 개념이 없거나 부족한 세상, 인권을 보호받지 못하는 곳으로 등치된다. 그만큼 인권은 현대인이 사람다운 사람이게 하는 존재 조건이기도 하다.
멀리 유엔 헌장이나 국제인권규약 등을 들먹이기 전에 우리 헌법도 모든 인간의 존엄성 보호를 명시하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인권은 한 사회의 민주주의 수준을 판별하는 척도가 된다.
언론은 민주주의의 파수꾼임을 자처한다. 따라서 언론이 인권을 취급하는 방식을 보면 그 사회의 민주주의 성숙도를 가늠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할 때 최근 일어난 두 사건을 다루는 언론의 보도는 우리가 민주주의 사회에 살고 있는지를 의심케 한다.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든 부녀자 연쇄살인사건에 대해 일부 언론들은 넘어서서는 안 되는 마지노선을 너무도 쉽게 넘나들고 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범인의 얼굴을 대문짝만하게 공개한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10년 넘게 집행이 유예돼 우리 사회 인권 수준의 바로미터가 된 사형을 집행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노골적으로 흘리고 있다. 세상이 변했기 때문이란다. 변하긴 변했다. 인권의식이 10년 전, 아니 중세시대 이전으로 퇴행하고 있음을 스스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언론이 보이고 있는 또 하나의 부도덕한 모습은 이른바 ‘용산 참사’ 문제를 다루는 데서도 드러난다. ‘사실(fact)’을 정확히 파악하고 전달하기 보다는 말이 없는 ‘죽은 이들’을 대신해 자신의 논리를 펴며 눈에 보이는 현실조차 비틀어 왜곡한다. 죽음이라는 명백한 사실은 있지만 죽은 까닭은 찾기 힘들다. 죽은 이들의 농성이 사회적 지탄의 대상이라고 하자. 그렇더라도 어느 누구도 이러한 행위에 참여했다는 이유만으로 어느 날 갑자기 주검이 될 순 없다. 아직 사인이 명확히 밝혀지지 않은 일이라지만,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공권력이 개입된 시민의 죽음이다. 그럴수록 사인을 규명하는 데 발 벗고 나서는 것이 언론의 책무다. 그런데 지금 보이고 있는 일부 언론의 모습은 정부의 대변인 역할,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듯하다.
언론 보도라도 인권에서 무한정 자유로울 순 없다. 수 만년 인류의 역사가 최근에서야 누리고 있는 인권은 태초 하느님께로부터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 인권 시계를 되돌리려는 것은 곧 다시 암흑으로 돌아가자는 것이나 다름없다.
두 사례에서 보듯 곳곳이 뚫린 공권력의 책임이 적지 않은 죽음을 대수로이 여기지 않고, 보도를 위해서라면 다른 사람의 인권도 가볍게 여기는 21세기 대한민국 언론.
이들이 주름잡는 사회라면 인권이라는 현대 문명의 공기를 마음껏 숨 쉴 수 있는 자리는 갈수록 줄어들 수밖에 없다. 아울러 그만큼 하느님 나라는 지상에서 자리를 잃어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언론이 하느님 나라를 좀먹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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