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어떤 존재인가. 인간은 단순한 물체가 아니다. 단순한 생물도 아니며, 동물도 아니다. 이 모든 것과 유대를 가지면서도 이 모든 것을 초월하는 정신적, 영적 존재다. 정신과 영은 한편으로는 학문의 대상이 될 수 있으면서도 과학적 연구 방법만으로는 도저히 파악할 수 없는 것이다. 특히 양심과 양심의 소리, 선을 행하고 악을 피하라는 도덕률은 시대와 장소를 초월하여 모든 인간이 가진 것이다. 어떻게 이런 도덕률이 있는지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다. 그 때문에 오늘날까지 수많은 학자들이 연구했지만 아직도 인간은 무엇이냐에 대한 답을 못하고 있다. 이렇게 인간에게는 과학적 탐구보다도 초월적 조명으로써 더 깊게 이해할 수 있는 신비가 있다.
그렇다면 인간은 누구인가. 오늘날 지각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인간의 존엄성을 말한다. 인간이라면 그가 누구든, 어떻게 생겼든, 잘났든 못났든 인간인 한 신성불가침의 존엄성을 지녔다. 이는 거의 대부분의 인류 사회가 인정하는 사실이다. 더 나아가 인간 존엄성은 신앙인은 물론이요 불신앙인, 무신론자, 유물론자들까지도 인정한다. 적어도 부인하지는 못한다. 그래서 세계 대부분의 나라가 인간 존엄성과 평등, 자유, 권리를 헌법에 명기하고 있다. 우리나라 헌법도 제 9조에서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고 밝히고 있다.
그런데 이 인간 존엄성은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법률에서 그렇게 밝혔기 때문인 그런 것이 아니다. 인간 존엄성은 법 이전의 천부적인 것이다. 평등도 마찬가지다. 법이 모든 인간은 법 앞에 평등하다고 한 것은, 법 이전에 인간은 천부적으로 존엄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인간 존엄성은 ‘천부적인 것’, 곧 하늘이 주신 것이다. 따라서 인간 존엄성은 하느님을 믿고 인정할 때에만 설명이 가능하다. 인간을 깊이 알기 위해서는 하느님을 인정해야 한다. 인간을 깊이 알 수 있는 것은 그 하느님과의 관계 안에서만 가능하다. 하느님을 배제하면 우리는 끝내 인간을 알 수 없게 된다.
인간 존엄성과 관련한 성경 말씀은 “하느님은 당신의 모습으로 인간을 창조하셨다” “하느님은 인간을 한없이 사랑하신다” “사랑에서 하느님은 인간을 영원히 살리시기를 원하신다” 등이다. 하느님이 인간을 절대적이요 조건없는 사랑으로 사랑하시기 때문에 인간은 존엄한 것이다.
하느님이 나를 현재 있는 그대로의 나를, 즉 내가 아무리 부족하고 못났다 하더라도 그런 나를 ‘여기서 지금(Hic et nunc)’ 사랑하신다는 것을 인식할 때, 인간 존엄성과 평등을 비로소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하느님의 구체적인 사랑을 빼면 인간이 존엄할 이유도 평등할 이유도 없다. 실로 인간의 자유, 평등, 박애는 실로 하느님의 사랑에 의해 지니게 되는 그 자체로서의 존엄성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 하느님의 사랑을 본받아 사랑을 해야 한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자유는 궁극적으로 사랑하기 위해서이다. 참으로 사랑하기 위해서 자유가 있다. 누구도 자유 없이 사랑할 수는 없다. 하느님이 우리에게 자유를 주신 것은 하느님의 그 사랑에 인간이 사랑으로 응답할 수 있기 위해서다. 그래서 당신 자신과 사랑 속에 결합되기 위해서다. 또한 모든 선한 것, 진리, 정의를 사랑하면서 완성되기 위해서다. 특히 같은 인간을 사랑하기 위해서 자유가 주어졌다.
인간은 생물적 존재이기에 음식도 필요하다. 공기도 필요하다. 그러나 동시에 진리, 정의, 사랑 등 정신적 빵도 먹어야한다. 그것은 또 무한하고 영원해야 한다. 무한하고 영원한 것, 이는 곧 하느님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사람은 음식으로 살지 않고 하느님 말씀으로 산다”고 하셨다.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주여, 당신은 우리를 당신께 향하여 만드셨으니, 당신께 가서 쉬기까지는 영원히 평안치 못합니다”라고 했다.
사랑…. 우리가 끝까지 지켜야 할 가치다. 그것은 하느님을 사랑하고 그 하느님이 절대적이요 조건없는 사랑으로 사랑하는 인간을 사랑하는 것이다. 그 때문에 예수님은 “마음을 다하고 정신과 힘을 다하여 하느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 이것이 가장 큰 계명이다”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또 “누구도 형제를 사랑하지 않으면서 하느님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없다”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하느님과 함께 이웃을, 특히 가난하고 불우한 이웃, 약한 이웃을 사랑할 줄 알아야 한다. 결국 이 두 사랑(하느님에 대한 사랑과 이웃에 대한 사랑)은 하나의 사랑이다.
인생의 길은 바로 이 사랑이다. 모든 이들이 사랑으로 인생을 걸었으면 좋겠다. 우리나라도 사람을 모든 것에 앞서 존중하고 어린이, 장애자, 노약자, 부녀자, 동물을 사랑할 줄 아는 나라가 되어야 하겠다. 오늘 이 시대에 한국의 정치인, 경제인, 지성인들이 이런 인간 사랑을 조금이라도 깨닫는다면 얼마나 다행한 일이겠는가. 그리고 유치원에서 대학에 이르기까지 이런 인간관을 기초로 한 생활 가치관을 교육을 통해 심어줄 수 있다면 얼마나 바람직한 일이겠는가. 그리고 언론이 이런 인간관과 가치관을 바탕으로 하여 사회의 목탁 역할을 한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사랑을 살 때 우리는 참으로 세계인이 될 수 있다. 그럴 때 한국은 세계에서 빛나는 큰 나라가 되며, 통일도 그 힘으로 이룩할 수 있다.
- 김수환 추기경 1996년 10월 31일 공군 대학 강연
* 김수환 추기경을 추모하며 그의 영성과 가르침을 따르기 위해 이번 호 사설은 김 추기경의 ‘사랑’에 관한 강연을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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