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의 대이동」이라고 일컫는 설을 쇠기 위해 이른 새벽부터 밤 늦게까지, 아니 밤을 꼬박 새도록 사람들로 북적댔던 역 대합실.
기차를 타려는 사람들과 입석표라도 구하기 위해 허리와 다리의 아픔의 고통도 참으며 끝도 보이지 않는 긴 줄을 서 있는 사람들. 선물 꾸러미를 가득 안고 가족이 함께 기차 시간을 기다리는 사람들. 그러나 이런 사람들의 즐거움과 행복의 뒤편에 모자를 푹 눌러 쓴 30대 후반의 한 남자가 물끄러미, 눈가엔 눈물을 머금은 채 쳐다보고 있었다.
경남 창원이 고향인 이 남자는 지난해 말, 힘들지만 행복한 가정을 꾸리며 근근히 운영해 오던 조그만 사업이 쓰러지자 채권자들을 피해 정신없이 서울로 도망쳐 왔다. 하루아침에 남의 일이라고만 생각했던 노숙자가 된 것이다. 근래 보기 드물었던 엄동설한의 매서운 추위와 배고픔도 참을 수 있었던 눈물이 설을 쇠기 위해 고향으로 내려가는 사람들을 보고는 참았던 눈물이 한꺼번에 쏟아져 내린 것이다. 이런 풍경은 TV에서나 볼 수 있는 한편의 드라마가 아니다. 비단 서울 뿐만 아니라 전국 어디서나 쉽게 우리의 삶 가까이서 볼 수 있는 참담한 우리 삶의 현실이다.
지난 97년「 IMF」로 이 사회가 한 번 뒤집어졌었다. 그때는 국민 모두가 이래선 안된다며 팔을 걷어부치고 고통을 참으며 정말 열심히 살아왔다. 그러나 지난 해 말 또다시 경제위기의 태풍이 몰아친 것이다. 실직자들이 더 많이 증가했고 무료급식을 위한 줄은 그 어느 때보다도 더 길어졌다.
그러나 한편에선 지금의 상황이 생각하는 것보다 그렇게 큰 위기가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배부른 자들의 생각없이 내뱉는 무책임한 말에 불과하다. 하루아침에 직장에서 쫓겨나고 삶의 터전을 잃어버려 하루 끼니를 걱정하고 잠자리를 걱정해야 하는 이들의 입장은 죽음밖에 생각할 수 없는 절박한 상황인 것이다.
더욱 더 참으로 답답한 것은 이 나라를 운영해 나간다고 큰소리를 치고 있는 「그분」들의 행태들이다. 지금 당장 무엇이 급하고 어떻게 대처해야 한다는 것을 모르는 것일까. 정말 몰라서 그렇게 팔장만 끼고 「그분」들의 이익만을 위해 방관하고 있는 것일까. 문제는 국민들의 어려움을 알고도 아무런 대책을 마련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더욱 가슴이 답답하고 아픈 것이다.
이번 설에 「그분」들께서는 국민들의 애환, 즉 민심을 들어봤다고 했다. 한결같이 「정치 할려면 제대로 해라」 「제발 그만 싸우고 국민을 위해 노력해라」는 등의 말을 들으면서 민심이 돌아섰다는 것을 느꼈다고 했다. 그분들께 진심으로 바란다. 국민들의 애환을 더 이상 외면하지 말고 온 가슴으로 받아들여 더 이상의 당리당략에 얽매이지 말고 진정으로 국민들을 위한 길이 무엇인지 깨달아 그들이 들었던 민심이 소위 「일회용 민심」이 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지난 IMF때 이미 우리는 단란했던 가정이 무참히 파괴되는 것을 수없이 보았다. 「가정을 지키자」는 말이 유행어가 될 정도로 가정파괴가 심각했었다. 이제 그 가정파괴가 또 다시 재현되고 있다. 정신을 못차리게 하는 구조조정과 회사부도로 실직자들이 급증하고 이로 인해 가족이 뿔뿔이 흩어지고 있다. 가족이 함께 살 수 없다는 것은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행복을 빼앗는 것이다. 추위가 또 다시 몰아치는 지금 최소한의 행복도 빼앗긴 채 흩어진 가족을 생각하며 흘리고 있는 노숙자들의 눈물을 잠시나마 생각하자.
비록 노숙자들의 고통에 동참을 할 수는 없어도, 이들에게 직접적인 도움을 주지 못할지라도 생활가운데 이들을 감싸안을 수 있는 마음을 키워나가자. 그래서 지금까지 살아온 시간들을 되돌아 보고 이젠 정말 새롭게 시작하자. 더이상 남의 일이라고 방관만 하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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