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루살렘은 예수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현장이고 예수님의 구원 사건을 목격한 사도들이 직접 복음을 전하여 오늘날까지 내려오고 있는 레바논 시리아 등 근동 지방의 교회들은 오늘날도 변함없이 그 정토안에 살고 있다는 것을 그곳의 사도들의 후계자인 주교들을 보면서 느낄 수가 있었다.
사도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이며, 대를 이어 증거하는 주교들도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성령의 내림으로 바르게 지금 이 세상에 전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동방교회의 목자들에게서 이러한 사도의 모습을 보는 것은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닐 것이다.
너무도 실제의 증인들인 이들 주교들에게서 주교가 어떤 사람들인가를 더욱 깊이 깨닫게 되고 이것은 아마 다른 주교도 또 다른 주교에게서 느끼는 서로의 차이에서 그 차이를 내 것으로 하는 같은 사도들의 후계자들인 것을 확인하는 은혜로운 과정인 것이다.
서로가 확실히 다른 것을 여러 모로 알 수가 있다. 전례가 다른 교회를 이루고 있는 주교들도 적지 않다. 또 처해 있는 사회 상황이 다르고 종교의 자유가 없는 곳에서 어렵게 사는 주교가 있는가 하면 신자 수가 자꾸 적어져서 교회가 사라질지 모르는 근심 앞에 사는 주교도 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고 그 사도들을 죽인 세상에서 지금도 죽음이 위협하는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것은 바로 죽음을 이기신 주님의 영이 함께 하심을 보이는 것이다.
생명을 주시는 성령으로 하나 되는 신비체를 이루며 그 신비체의 지체들이 함께 살아 움직이는 일치로 그리스도의 제자들임을 그대로 보이고 있는 것이다.
구체적인 상황 안에 놓인 교회가 그 지역에서 뿌리내리기를 바라는 마음은 다 같은 것이다. 그래서 토착화의 문제를 말하고 교회와 지역이 각각 따로 존재하지 않고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주교들은 역설하였다.
다만 어떻게 토착화를 이루어 나갈 것인가에 대해 정리가 있어야 하고 토착화로 인해서 교회가 왜곡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계속 확인하는 생각이 마음 밑바탕에 깔려 있음을 보고 모두가 거기에 동의하고 있었다.
또 한가지 주교들의 관심사는 타종교와의 대화였는데, 그것과 마찬가지로 교리의 차원에서 혼합주의를 이끌어내자는 것이 아닌 것이 사실이라 어떻게 대화를 할 수 있는가가 문제의 핵심이었다.
말하자면 타종교의 사람도 그들 나름대로의 신앙으로 살고 있는 것을 존중해야 하고 함께 이 세상에 살며 서로 사랑하고 진리의 길을 함께 걸어 가자는 것인 것이다.
사랑의 실천이 대화로 이끌고 그 대화는 종교가 다르다고 단절될 수 없으며 더욱 권장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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