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최고통치자인 김대중 대통령은 기회 있을 때마다 국가보안법 폐지를 언급해 왔다. 남북간의 군사적 긴장관계 등 특수한 상황에서도 정부 여당은 국가보안법 개정을 추진하면서 그 가장 큰 이유로 인권침해의 피해를 들고 있다.
국가보안법이 국가 발전의 걸림돌이 되고 가장 위급한 병폐로 작용하고 있는 것일까? 이보다 더 시급한 국사가 산적해 있는 것은 아닐까?
대통령은 광복절 경축사에서 『민주화와 인권보장은 제 일생의 변함없는 소신』이라고 밝히고 자랑스런 인권국가를 만들겠다는 결의를 다졌다. 김대통령이 인권 대통령으로 역사에 남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이처럼 국가의 상층부에서는 인권을 강조하고 인권보장을 위한 법까지 새로 만들겠다는 판인데 인권의 현장은 어떠한가?
씨랜드 화재 참사로 아들을 잃은 필드하키 국가대표 출신 어머니가 얼마전 국가로부터 받은 훈장을 모두 반납하고 머지않아 뉴질랜드로 이민 갈 뜻을 밝혔다. 무엇 때문일까? 『아들 하나 지켜주지 못하는 나라에서 받은 훈장이 무슨 소용 있느냐』는 것이다. 그는 헌법에 보장된 국민의 기본권조차 지켜주지 못한 정부에 무한한 분노를 느꼈다고 했다. 그래서 자기를 낳아준 나라를 등지려는 참담한 심정을 이렇게 토로한 것이다.
행복추구권을 보장해 주지 못하는 정부에 대한 불신과 분노를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안심하고 살 수 없는 나라, 자식 하나 안심하고 키울 수 없는 나라에서 인권이란 어떤 의미를 지니는 것일까? 탈옥수 신창원의 보복을 피해 2년 6개월 동안 숨어살다 가정이 풍비박산된 이철화씨가 『국가가 죄인을 제대로 관리했더라면 제 가정이 이렇게 파탄 나지 않았을 것』이라며 10년 전 범인을 처음 신고한 것을 자탄하는 절규를 쏟아냈다. 어디 이들만의 한이고 절망이겠는가?
경찰은 지난번 서울대에서 열린 제 10차 범민족대회 때 한총련 학생들을 검거하는 과정에서 대학원 학생, 시민들까지 무리하게 연행해 물의를 빚은 바 있다. 등산객들의 신분증 확인 절차도 없이 강제로 전경버스에 태워 경찰서까지 끌고 간 것이다. 그 중엔 임신한 주부도 끼여 있었다. 경찰의 불심검문은 상당한 이유가 있을 경우에만 실시할 수 있도록 관련법에 규정하고 있으나 무차별, 강제적으로 사람을 잡아들이고 가둔다면 이 나라의 인권은 어디에 있단 말인가?
검찰은 최근 비리와 연루된 두 피해자를 연행하면서 제때에 통보하지 않아 가족들이 경찰에 실종신고를 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수사기관이 법절차를 무시해 빚어진 인권침해 사례가 아닐 수 없다. 신고를 받은 경찰의 수사가 시작되자 그제서야 피의자 연행 사실을 가족들에게 알렸다고 하니, 검찰수사관들이 피의자들을 체포하면서 진술거부권과 변호인선임권 등을 반드시 알려주게 돼있는 「미란다 원칙」이나마 제대로 지켰을까?
수사기관의 인권에 대한 주의 소홀히 얼마나 고질적인가? 법에 정해진 인권장치조차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수사기관의 나쁜 관행은 여전히 살아 있는 것이다. 우리는 정부 여당이 보안법 문제보다 더 시급한 국사가 산적해 있는데도 그보다 보안법이 마치 가장 위급한 병폐인양 취급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의구심을 갖게 된다.
인권개선은 대통령의 의지만으로 이뤄지지는 않는다. 인권위원회의 장치 마련만으로 개선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일선과 현장에서의 고질화된 나쁜 관행이 개선되지 않고서는 인권개선의 진전은 한낱 구호에 끝나고 말 것이다. 무엇이 먼저이고, 무엇이 나중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판단이 서고, 그 바탕 위에 인권개선 문제가 앞자리에 놓일 때 우리 나라는 안전하게 살 수 있는 나라, 자식을 안심하고 키울 수 있는 나라가 될 것임은 두말할 나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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