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신축교안으로 서린 한이 웅어리져 마음속에 박혀있는… 교회는 제주도와의 사회적·문화적 대화의 노력을 펴야… 또한 화해와 일치를 다짐하고 노력해야… 그리하여 제주도민과의 신앙적 육화를 통해 신축교안의 아픔을 승화시켜야…
역사적 교훈은?
개교 2년만에 참극을 수반한 신축교안을 겪어야 했던 제주 천주교회는 지금 개교 100주년을 기념하는 해를 지내고 있다. 한편 20세기를 종말짓는 해를 맞아 지난 100년사를 회고하며 21세기 미래의 발전을 다짐하고 있다. 이 시점에서 20세기 초년인 1901년에 제주도에서 벌어졌던 신축교안에서 미래사 발전을 위해 어떤 역사적 교훈을 찾아야 할 것인가.
신축교안의 참극이 벌어지게 된 원인은 교회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천주교가 제주에 들어와 포교를 시작한 초두에 벌어졌던 것이 사실이다. 그것이 박해에서 자유로 대 그리스도교 종교정책의 과도이행기에 생겨 날 수 있었던 문제였다 하더라도, 그 소요가 벌어짐에 교회로서의 유감스러움이 없었는지 냉철한 자기 성찰이 필요하며, 이런 성찰에 터전하여 그리스도 신앙과 제주사회의 육화를 위한 진지한 노력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그간 제주교회는 이러한 성찰과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았기에 오늘날 격렬한 교안이 벌어졌던 제주도 전 주민의 8.84%가 천주교회의 문을 두드려 하느님과의 일치, 이웃과 사랑을 나누는 생활을 실천하고 있다고 하겠다.(1998년 말 제주도 인구총수 53만4715명에 천주교 신자수는 4만7297명으로 집계되었다)
신자 점유율이 전국 제1인 서울대교구 다음으로 높다. 이 사실은 신축교안의 아픔이 있었던 제주도이기에 놀라운 사실이 아닐 수 없다. 제주도 곳곳에 자리잡은 22개의 교회는 그리스도신앙 봉행의 거점적 역할을 담당하고 있으며, 동시에 제주도민과의 대화와 화해 일치를 다지는 정신적·사회적 센터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본토와 격리된 섬 주민으로서의 완고한 자아의식, 뿌리 깊은 전통적 민속신앙, 외래적인 것에 대한 의혹과 폐쇄성 때문에 절해고도민에 대한 외래종교인 그리스도교 전교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온 섬이 소요에 휩싸이는 격렬한 전투까지 벌어졌었고 수다한 인명의 희생까지 낸 교안의 소요가 전개되었던 제주도에서 그리스도 신앙의 전교와 교회의 발전을 추진함은 다른 어느 지역보다도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신축교안의 소요는 제주 천주교회가 피해올 수 없었던 결정적 걸림돌이었다. 제주교회가 거둔 오늘날의 이 귀한 전교 열매는 이 걸림돌을 뛰어넘는 진지한 노력이 있었고, 그것이 제주도민의 가슴에 와닿았기 때문에 거둘 수 있었던 귀한 수확이 아닐 수 없다.
교회의 상처 치유 노력
여기서 신축교안 소요의 진원지였던 대정군 한림에서 한 이방인 성직자가 시작한 4H가축은행운동과 성 이시돌목장의 사업을 생각하게 된다. 1958년에 이 사업을 시작한 임 맥그린치 신부는 바로 20세기 초두 선배 서양 성직자들이 제주 개교 초에 휘말리게 되었던 신축교안 진원지에 믿음과 사랑을 심으려는 뜻을 품고, 낙후된 농촌의 갱생 발전과 사랑으로 규합되는 공동체를 키우려 나섰다.
4H가축은행, 한림목장(이시돌목장), 농업훈련센터와 한림신용협동조합운동을 추진하여 제주도의 경제적·정신적 풍요를 이루어 내고자 하였을 것으로 그 의도를 헤아려 보는 것이다. 한편 통회와 회개 그리고 기구(祈求)의 피정센터를 마련하여 그리스도적 정신연수사업을 추진하였다. 이방인 성직자이지만 대정·한림 주민과, 제주도민과 함께하기 위한 생활의 실천에서 신축교안 때와는 다른 서양 성직자를 대하게 된 지방민의 이해와 동조를 얻게 되었을 것이다.
권면과 설득에 앞서 신축교안의 아픈 상처를 치유함에, 천주교회와 성직자를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되어 대정·한림 지방인의 응어리졌던 감정과 원한이 점차 해소된 것으로 보아 과히 빗나간 생각은 아닐 것이다. 비단 임 맥그린치 신부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즉 제주교회 소속의 각층 구성원(주교, 신부, 수도자와 교인들)들은 각기 생각은 다르고 행하는 표양은 달랐다 하더라도, 각별한 조심과 신중한 노력에 터전한 신앙과 생활로 제주민에 진지하게 대하였기에 가장 개방적인 서울대교구에 뒤이어, 제주도 전주민 8.84%가 오늘날 천주신앙에 귀의하였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신축교안으로 서린 한이 응어리져 마음속에 박혀있는 일도 없지 않을 것이다. 교회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 정신에 터전하여 제주도와의 사회적·문화적 대화의 노력을 펴야 할 것이다. 또한 화해와 일치를 다짐하고 노력하여야 한다. 그리하여 제주도민과의 신앙적 육화를 통해 신축교안의 아픔을 승화시켜야 할 것이다. 제주도민도 신축교안으로 응어리졌던 원한을 대승적으로 승화시킬 현대적 개방의식과 그 불행에서 오늘을 사는데 필요한 교훈을 찾는 지혜를 살려야 한다. 신축교안의 희생자 다수가 천주교인이라 하나, 그 밖의 무고한 민인 희생자도 있었다. 이들도 모두 제주도민이었다.
한편 이런 참극에서의 피해자도, 가해자도 제주도민이었다. 이들의 죽음을 오늘에 사는 제주 후손들은 헛되이 하지 않기 위해 그 영혼을 편안토록 어루만져주고, 그 희생을 죽음으로 버려둘 것이 아니라그들의 희생에서 오늘을 사는 우리들이 사회적·종교적 교훈을 터득 실천하여야 할 것이다.
지금은 진실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며, 잘못과 책임을 따지기보다는 그 참극을 역사 발전에 대승적으로 승화시켜야 할 때다. 과거에만 집착하는 민족은 세계사 와류에 휘말려 침몰하게 되며, 화해와 사랑을 나눌줄 모르는 백성은 역사의 뒤안으로 사라지게 된다고 선현들은 가르치고 있다. 불행했던 신축교안을 지난날에 제주도가 겪었던 아픔으로 기억하고, 그 아픔을 뛰어넘을 공동체적 노력이 추진될 때 제주도의 앞날을 더욱 크게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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