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대희년 6월 25일 0시. 전국의 15개 교구 6625명은 강원도 철원군 월정리역 광장에서 밤을 지새우며 갈라진 민족의 화합과 이 땅의 평화를 위해 기도를 올렸다.
한반도의 비극적인 분단 역사를 웅변해주듯 '철마는 달리고 싶다'라고 쓰여진 간판 아래 객차의 잔해와 유엔군의 폭격으로 부서진 인민군 화물열차가 누워있는 월정리역은 이날 민족의 새로운 세기를 염원하는 우리들의 간절한 기도로 가득 찼다.
춘천교구가 주관하는 대희년 전국대회의 하나로 치러진 이날 행사를 통해 우리는 민족 분단의 현실이 얼마나 비극적인지, 그리고 한민족으로서,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 자신들이 민족과 역사, 그리고 하느님 앞에 얼마나 무거운 책임을 지고 있는지를 깨달았다.
특히 이날 참석자들은 교회가 교회답지 못하고 신자가 신자답지 못했음을 반성하고 참회하며 새로운 결심을 다지는 기회를 가졌다.
춘천교구는 이날 행사에 앞서 50일 동안 교구내 전 본당이 순례 기도를 하며 이러한 참회의 시간을 가졌다. 남북 정상회담의 성공적인 개최로 인해 우리는 통일의 기대가 더 이상 꿈만은 아니라는 것을 피부로 느끼고 있다. 물론 섣부른 기대나 성급한 앞걸음은 삼갈지라도 50년이 넘는 분단의 비극이 더 이상 허망한 이상만은 아니라고 느끼게 됐다.
하지만 우리는 진정한 통일, 민족의 참된 화해와 일치를 이루기 위해서는 먼저 각자 지난 반세기를 지나오면서 서로에게 잘못한 과오를 깊이 성찰하고 참회할 필요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행사에 앞서 이러한 참회의 프로그램을 마련했던 것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참석자들은 이날 미사에서 참회 예절을 통해 서로를 원수로 여겨 총칼을 들이댄 죄를 참회했다. 또 교회가 민족적 고난 속에서 스스로의 보전에만 얽매여 소극적으로 일관했음을 고백했다.
이제 우리는 이날 월정리에서의 고백이 앞으로 통일의 그날까지 겸허하게 이어지기를 고대한다.
참된 화해는 서로의 잘못을 용서할 때, 그리고 그에 앞서 스스로의 잘못에 대해 고백하고 용서를 청할 때 가능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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