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있으라 다시 만나요 / 잘 가시라 다시 만나요 / 목메어 소리칩니다 / 안녕히 다시 만나요』
지난 해 여름, 내가 정의구현전국사제단의 일원으로 평양에 갔을 때 동행했던 김은선 수녀님과 이진숙 수녀님, 그리고 북한 안내원인 고영희 동무가 함께 부르고 또 불렀던, 북한에서도 한참 유행이라는 노래의 후렴 부분이다. 몇 날 며칠을 두고 부르던 노래는 그것 말고도 몇 곡 더 있었는데 서울에서도 들은 적이 있는 휘파람인가 하는 노래 외에는 생각이 나지 않는다. 아무튼 그 세 분은 차를 타든 나란히 걷든 떨어질세라 팔장을 끼고 무엇이 그리도 좋은 지 줄곧 소곤거리고 노래하고 깔깔 웃어댔다. 남·북한의 4, 5, 60대, 각기 다른 세대의 세 여인은 30도를 훨씬 웃도는 더위나 옷차림에도 아랑곳 없었다. 아름답고 행복해 보였다.
네 명의 신부들에게도 북한의 남자 안내원 두 명이 배정되었다. 우리 여섯 명은 평양에 체류하는 동안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거의 늘 함께 붙어 있었다. 여자들과 달리 우리는 저녁마다 술도 마시면서 조금이라도 더 친해지려고 무진 애를 썼지만 솔직히 말해서 한주간의 일정을 마치고 돌아오는 날이 되어도 서먹서먹한 감은 여전했다. 그랬다. 친해져야 속에 있는 것을 숨김없이 다 꺼내놓고 얘기할 수 있을 터인데 그게 안됐다. 남·북은 통틀어 남자 여섯 명은 여자 셋의 친화력을 결코 따라갈 수가 없었다.
몰라서 그럴까? 남·북은 여전히 남성 위주의 대표단을 구성해서 협상 테이블에 보내고 있다. 정상회담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니다. 여성보다 쉽게 친해지지도 못하는 남성을 굳이 중심에 두고 여성을 들러리 정도로 여기는 까닭은 대체 무엇일까.
다음은 지난 해 11월 19일에 반포한 인천교구 대의원회의 최종문서다.
『현재 한국천주교회의 여성 신자의 성비는 10명당 6.5명, 인천교구는 그보다 조금 많은 6.95명으로 나타났다. 통계에 의하면 절반 이상(52%)의 여성 신자들이 본당 사목평의회에 40%의 여성 위원이 참여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57%는 여성 복사나 성체분배와 같은 전례에 여성의 참여를 찬성하고 있다 … 남편은 사회에서 경제적 기능을, 여성은 가정에서 집안 일에 전념해야 한다는 전통적인 「성 역할 관념」에 대한 조사에서 여성 신자의 75.1%가 반대 입장을 보였다』. 그러나 실제로는 『본당 여성 신자의 역할과 지위는 봉사와 자선의 차원에 머물러 있다』(여성 사목/여성의 존엄과 소명 8).
일반 신자들의 의식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천주교회, 특히 한국천주교회는 왜 우리 사회에서 가장 남성 중심적이란 지적을 면치 못할까. 무엇이 어려워 남녀가 평등한 교계제도를 만들지 못하는가. 두 말할 것도 없이 오직 성직자만이 조직의 핵심에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성직자는 대부분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가부장제에 오랫동안 길들여져 육성된 사람이기 때문이다. 나도 신학교에서 여성을 멀리하는 것이 성직자들의 수덕이라고 배웠다. 그러나 중세기의 교부들의 말처럼 여성은 이미 이 사회에서 더는 「퇴치해야 할 마귀」가 아니다. 지금이 어느 세상인가. 정부 조직 안에 여성부가 생기고 사나이 중의 사나이만 길러낸다는 공군사관학교에서도 18명의 여성 장교가 탄생했다. 성급하게 「여성 사제」까지는 아니더라도 교회 안에서 여성에 대한 인식을 바르게 갖도록 하는 교육은 절대 필요하다.
둘째, 「여성의 적은 여성」이라는 흔한 말도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장애요소로 작용한다. 여성학자들에 의하면 이것은 특히 가정에서 여성이 자기 삶의 주체가 되지 못하고 남성인 남편과 아들을 삶의 목표로 삼는데서 비롯된다고 한다. 그러니 한 남성만을 바라보고 사는 어머니와 며느리라면 라이벌 관계에 놓일 수밖에. 또 한가지 해석이 있다. 여성이 남성은 아예 경쟁의 상대에서 제쳐두고 자기들끼리 은메달을 겨루는 데서 나왔다는 것이다. 여성 유권자가 여성 후보를 외면하는 것이라든가 여성 신자가 여성 성체분배자 앞에 줄서기를 싫어하는 실례들이 여기에 해당될 터이다. 여성에 대한 주체의식 교육이 절실하다. 더 이상 엄마의 뱃속에 있는 아기가 단지 여자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살해되어서는 안된다.
때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한국주교회의는 평신도사도직위원회 산하에 여성소위원회를 두기로 결정했다. 그나마 수녀장상연합회를 비롯한 교회 내의 여성 단체들이 벌써부터 여러 차례 공식적인 여성위원회의 필요성을 소리높여 강조해온 결실이라 한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앞으로 여성들이 이것저것 다 하자고 나서면 이제 우리 주교, 신부들은 뭘 하지?』 하고 우스개 소리를 한 분도 있다는데 아무튼 주교회의 여성소위는 성직자(남성)가 자발적으로 여성에게 내린 하사품이 아니다. 나도 이참에 호주제 폐지 운동의 일환으로 벌이고 있는 부모 성 같이 쓰기 운동에라도 참여해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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