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의 충돌」은 종교의 충돌, 곧 이슬람과 그리스도교 문명이 미래의 가장 광범위한 분쟁의 시발이 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그만큼 이슬람과 그리스도교간의 갈등과 분쟁의 뿌리는 깊고도 넓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4일부터 그리스, 시리아, 몰타로 이어지는 순방길에 나선 것은 사도 바오로의 선교의 발자취를 따라간 성지순례이다. 하지만 이 여정에서 매우 두드러지게 나타난 특징은 종교간 대화와 교회 일치의 노력이다.
교황은 우선 그리스를 방문해서는 대희년 기간에 이뤄진 「기억의 정화」를 연상케하는 용서의 청원을 발했다. 교황은 십자군 전쟁을 예로 들면서 가톨릭 교회의 자녀들이 동방교회의 형제자매들에게 한 잘못된 행위들에 대해 인정하고 이에 대해 용서를 청하자고 말했다.
사실 교황의 그리스 방문이 성사되기까지는 매우 많은 난관들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교황의 방문을 코앞에 두고서도 많은 정교회 신자들과 교회 관계자들은 적극 반대하기도 했다. 그리스정교회 최고회의에서 교황의 방문을 공식적으로 지지한 것이 의외라고 여길 만큼 정교회의 가톨릭에 대한 갈등의 골은 깊었다.
교황은 또 시리아를 방문해서는 교회 역사상 교황으로서는 처음으로 이슬람 사원에 들어가 기도를 바쳤다. 이슬람과의 관계가 분쟁의 단계를 넘어서 전쟁으로까지 진전될 것이 우려되는 오늘날 상황에서 교황의 이슬람 사원 방문은 매우 큰 전환점이 아닐 수 없다.
교황은 이 자리에서 분명하게 종교를 빙자한 어떠한 형태의 폭력 행위나 미움과 증오도 정당화될 수 없음을 밝혔다. 폭력을 정당화하는 것은 종교의 근본 취지와 의미에 정반대되는 것이다. 교황은 『폭력은 피조물들 안에 간직된 창조주의 모습을 파괴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교황의 너무도 당연한 이 말은 특별히 중동의 역사적, 지리적, 국제정치적 특성을 배경으로 더욱 간절한 염원으로 들려온다.
「행동하는 교황」요한 바오로 2세는 올해 80세의 노구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세계 각국을 향해 발걸음을 멈추지 않고 있다. 지난 1978년 이래 23년 동안 교황은 전세계140여개국을 순방했다. 총연장 120여만 km의 여정은 지구 둘레의 27배에 달한다.
분열과 분쟁으로 점철됐던 지난 천년기를 마무리하고 새 천년을 평화의 새 세상으로 건설하기 위한 교황의 노력은 이미 잘 알려진 것이다. 특별히 갈라진 형제들과의 일치와 타종교와의 대화 노력은 몇몇 비판적 주장에도 불구하고 꾸준하게 이어지고 있다. 교황의 이러한 노력은 특히 다종교, 다문화 사회인 우리나라에 있어서도 적지 않은 의미를 갖는다. 위대한 전통 종교와 사상들을 간직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이들 전통, 종교와의 대화 노력은 앞으로 더욱 절실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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