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기 리스트, 원철희 리스트, 최순영 리스트에 온 나라가 들썩였다. 쉰들러 리스트로 유명해진 리스트 경쟁은 다른 나라에서는 코소보 전쟁, 제2차 세계 대전의 구명 리스트였다면 우리 나라에서는 로비 목록 리스트이다. 한국판 리스트라고나 할까.
그런데 이들 리스트는 서구의 구명 리스트와는 반대로 죄를 지은 사람의 세치 혀에 따라 사람의 운명을 좌우하는 사형 리스트인 셈이다. 문제는 이미 죄를 지은이들이 신을 두려워할 리도 없고 법을 두려워할 리도 없는 사람들이라는 점이다. 그들은 이미 돈과 개인의 입신을 위해서라면 법과 질서를 어기고 돈으로 사람을 매수하는데 이골이 난 사람들이다.
그러나 이들의 입에서 나오는 리스트는 말할 것도 없이 이들이 살기 위한 정치적 거래 또는 수단이 되기 마련인데도 사람들은 그 입만 쳐다보고 그 입에서 나온 이름 석자에 흥분하고 개탄하기를 서슴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저들의 입에서 거명되는 이름이 평상시 말을 잘 안 들어 준 사람을 찍어 넘어뜨릴 가능성도 충분하다고 짐작할 수 있다. 더구나 수십 억이니 하는 거액은 아예 너무 크게 놀았기 때문에 면죄부가 얻어지는 경향도 있다.
리스트 재판의 또 다른 함정은 죄를 뉘우치게 하지 않는 다는점이다. 리스트에 거명된 사람은 물론 리스트를 만들어 내는 사람도 죄에 대한 원천적 반성은 사라지고 억울한 경쟁이다. 마치 남의 더 큰 잘못을 들춰냄으로써 자신의 잘못을 덮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리스트의 함정을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낸 것은 이형자 리스트였다. 이형자 리스트는 그것이 옷이라는 이유 때문에 사모님들이 개입되어 있다는 이유 때문에 언론의 집중적인 세례를 받았다.
수억원의 로비보다 수천만원 짜리의 여성의 옷에 온 국민이 더 분노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는 아녀자들이 감히 남편의 권력을 나누어 가졌다는 것, 둘째는 서민들에게 위화감을 주는 가격의 옷이나 입는 소비의 주역이라는 점이다. 더 나아가 문제가 된 고급옷 이외에도 강남의 상류층 부인들이 드나드는 가게에서는 문제가 된 옷이 고급 축에도 끼지 못한다느니 밍크코트는 중고품이었다느니 하는 설까지 동원되었다. 모든 여성은 안방 정치의 주역이며 과소비의 주역이라는 마녀재판을 받았다. 정부도 언론도 한국 여성들의 자식과 남편의 출세에 대한 지나친 집착, 중산층 여성들의 비사회성, 과소비의 문제의 근원을 들여다보려고 하지 않고 표면적 사실에 흥분하고 개탄하기를 반복하고 있다. 정부는 고급옷 로비 의혹을 계기로 사정을 더 강화하고 공직자 부인의 기강을 잡기 위해 고급품 소비를 제한하는 수칙까지 발표하였다.
그러나 고급 옷을 벗게 하는 데도 햇볕론이 유효하다는 것을 왜 모를까? 여성들 스스로, 또는 사회 전체가 고급 옷에 대한 찬탄과 예찬을 그치고 부끄러움을 느끼게 만드는 분위기를 만들어 내면 고급 옷을 입으라고 사정을 해도 입지 않는다. 여성을 사회의 동반자로 끌어안고 있는 서구 사회에서는 자기 자식도 중요하지만 전쟁 방지는 더 중요하다는 것을 인식하고 평화 운동에 나서던가 시민 운동에 앞장서고 그것의 헌신을 인정받아 국회의원 장관 등의 정치적 대표자가 된다.
서구 사회의 여성 장관과 국회의원들은 청바지를 입고 의회에 나가는 파격도 서슴지 않고 있다. 수많은 여성들이 남편의 승진 또는 구명을 위한 미덕이 사회적 파렴치범이 되고 남 앞에서 자존심을 살리기 위한 소박한 동기가 과소비를 부추기게 되는 악순환의 고리를 풀어야 문제의 해법이 열린다.
지난 대선 때 모든 대통령 후보들은 고위직 여성 채용 할당제를 30%, 40%까지 경쟁적으로 약속한 바 있다. 그런데 이번에 새로운 조각에는 연극배우 출신의 유일한 여성 환경장관 외에는 차관급에도 여성은 찾아볼 수 없다. 생태주의와 여성주의의 조화라는 세계적 추세에 맞춰 환경부장관을 여성으로 기용한 것은 선진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단지 여성이기 때문에라는 식의 논리는 곤란하다. 여성의 대표는 생물학적인 여성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정치 사회적 대표성으로서의 여성을 의미한다.
여성의 정치 사회적 대표성이 묵살되게 되면 여성들은 대표 선수인 집안의 남자들을 내세워 자신의 사회성을 대변하고자 한다.
남편의 승진과 구명을 위해서라면 사회적으로 지탄받을 행위도 불사하고 고급 옷으로만 자신의 존재를 과시하는 여성 이외의 그 무엇이 되겠는가.
여성을 사회를 이끌어 가는 책임 있는 동반자로 호명하게 되면 여성 스스로 밍크코트를 벗는다. 일하는 전문직 여성이 밍크코트를 입고 출근하는 것을 보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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