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전 신자들과 함께 방문을 나가기 위해 사제관을 나서려는데 전화벨이 울린다. 성당이라 대답했더니 사무장을 바꿔 달란다. 사실 우리같은 시골 성당에는 사무장이나 수녀님이 계시지 않는다. 본당신부가 모든 역할을 다 해야하는 잡부라고나 할까? 그냥 말씀하시라고 했더니 혼배에 필요하다며 세례문서를 보내 달란다. 인적사항을 적어 놓고는 밖에 신자들이 방문을 위해 기다리고 있어 함께 방문길에 나섰다.
판공방문이라 하루종일 돌아다니다 저녁미사 무렵에야 본당엘 돌아와 성사를 주고 미사를 하고 미사 후에 있는 단체들을 돌보고 나니 몸이 늘어진다. 다음날도 판공방문이 있어 쉬고 며칠동안 같은 일과가 반복 되었다. 그다음 주일에 미사를 들어 가려는데 한 남자의 목소리로부터 사무장을 찾는 또 한통의 전화를 받았다. 그순간 아차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번에 부탁했던 세례문서 생각이 났고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몇차례 전화를 했는데 통화를 못했다는 으름장과 함께 사무장이 뭐하느냐며 교회의 녹을 먹으려면 똑바로 하라는 충고도 잊지 않았다. 어떻게 변명도 한번 못해 보고 전화를 끊고는 주일미사 내내 분심이 들었다. 그분에게 탓을 돌리는 것은 아니다. 그러면서도 상대가 처한 처지를 조금만 더 이해 했다면 하는 아쉬운 마음과 함께 이웃의 십자가를 나눌 의무를 지닌 우리는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줄 아는 눈을 또, 아무도 귀 기울여 들어주는 이 없는 이들의 소리를 더 소중히 여기는 귀를 주님께 청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오늘 복음 중에 주님께서는 못보는 사람은 보게하고 보는 사람은 눈멀게 하시려고 이 세상에 오셨다며 마음이 완고한 바리새이를 꾸짖으신다. 어느새 보이는 것에 익숙해져 말이 앞서는 나에게서 바리새이의 모습이 보여 부끄럽다.
"주님, 작은 시골 성당을 지키는 이 잡부의 눈을 뜨게 해 주십시오.보이는 것으로 판단하는 눈을 멀게 해 주시고, 교우들의 마음 속에 들어있는 작고 예쁜 주님을 향한 마음을 볼 줄 아는 주님의 눈을 가진, 주님의 잡부가 되게 해 주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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