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싸한 쑥향이 거실을 채웠다. 저녁 식탁에 쑥국이 오른 것이다. 짙은 향과 함께 몽을몽을 피어오르는 김이 참으로 다사롭다. 문득 고향이 눈앞에 펼쳐졌다. 봄이 되면 마을 들녘은 온통 아낙네들 차지였다. 어머니도 예외는 아니어서 틈만 나면 바구니를 끼고 부지런히 들녘을 누볐다.
50년대를 거쳐온 사람이라면 그 지긋지긋하던 가난을 결코 잊을 수가 없을 것이다. 문자 그대로 초근목피(草根木皮)로 겨우 명줄을 이어가던 시절이 아니었던가? 그럴 때 쑥은 훌륭한 구황식품(救荒食品)이었다. 쑥은 토질의 양분를 가리지 않고 일부러이듯 어디에고 돋아나 가난한 마을 사람들의 허기를 달래주었던 것이다.
해동이 되기만 하면 마을 골목은 쑥국 냄새로 일렁였고, 명절이나 경사 때는 먹음직한 쑥떡이 보자기에 싸여 바쁘게 이웃집을 드나들었다. 쑥버무리는 꼬마들의 군침을 괴게하는 거의 유일한 간식거리이기도 했다. 쑥이 돋아나면서부터 다 쇠기까지 어머니 손톱은 항상 쑥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마른 쑥 냄새는 언제나 집안에서 살았다.
지독한 가난 속에서도 식구들을 상머리로 끌어모아 오순도순 얘기꽃을 피우게 하고 이웃끼리 따뜻한 인정을 나누게 했던 쑥은 그러나 언제부터인지 슬그머니 식탁에서 사라져갔다. 그러면서 옛날의 사랑이나 인정도 덩달아 슬그머니 사라지고 말았다.
개구리가 올챙이적 생각을 못한다는 말이 있듯이 그동안 나는 쑥을 너무 오랫동안 잊고 살아온 게 아닌가? 하기야 잊으면 안될 소중한 것들이 어디 쑥뿐이랴. 마땅히 기억하고 보존해야 할 것들은 외면한 채, 이 핑계 저 핑계로 허화(虛華)에 들떠 사는 나날이 참으로 안타깝고 부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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