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시내버스를 탔을 때의 일이다. 옆자리에 앉은 젊은 아가씨가 바람에 흩날리는 제 머리칼을 신경질적으로 계속 매만지고 있더니 건너편에 앉은 오십 줄의 아주머니에게 불연 소리를 치는 것이었다.
"아주머니 거기 창문 좀 닫아요"
아주머니의 좌석 옆 열린 창문을 통해 들어온 바람이 자신의 머리칼을 흐트러뜨리고 있다는 사실을 도저히 참을 수 없다는 투였다. 스물을 겨우 넘겼을까 말까한 어린 아가씨의 당돌한 말투에 당사자인 아주머니는 어이 없는 표정으로 아가씨를 바라보았고, 이내 상대하고 싶지 않다는 듯 고개를 돌려 버렸다.
몇 초나 지났을까, 아주머니가 창문을 닫지 않자 아가씨는 벌떡 일어나 건너편 자리로 가더니 아주 거친 손동작으로 창문을 닫는 게 아닌가. 그리곤 고개를 꼿꼿이 쳐들고 제 자리로 돌아와 앉았다. 순간 묘한 분위기가 흘렀다. 주변의 승객들은 모두 뭐 이렇게 버릇 없는 아이가 다 있나 하는 눈빛으로 그녀의 아래 위를 훑어보았고, 그런 다음에는 승객들끼리 서로 눈을 마주치며 다들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음을 말없이 확인했다. 순간적으로 바쁘게 교차되었던 승객들의 눈빛 속에는 "우리 저런 아이에게 따끔하게 한 마디 해 주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소리 없는 말이 담겨 있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무도 소리를 내지는 않았다.
저렇게 예의없는 아이에게 한 마디 했다가 어떤 수모를 당할 지도 모른다는 염려가 우리 속에 숨어 있었던 것은 아닐까. 만일 그렇게 된다면 내 꼴이 우습게 될 것이고, 그런 상황을 싫어하는 지나친 자기방어가 우리 모두의 입을 닫아버린 것일까. 행여 작은 피해라도 볼까봐 멈칫거리는 우리네 모습을 거울에 비추어 보며, 백주대낮에 폭행을 당해도 도와주는 행인이 없는 오늘의 세태를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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