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엘리베이터에 한 가족이 탔다. 젊은 부부와 다섯살쯤 되어 보이는 귀여운 여자 아이. 소녀는 아기를 가진 엄마의 부른 배가 신기한지 자꾸 들여다 보고 있다. 참으로 행복해 보이는 가족이었다. 엄마가 어린딸에게 물었다.
"여자 동생이었으면 좋겠니? 남자동생이었으면 좋겠니?" 아이는 얼른 대답했다. 여자동생! 그러자 엄마는 별안간 목청을 높였다.
"얘 끔찍한 소리 하지 마라. 나 죽는 꼴 보고싶니?"
순간 아름다운 가족의 모습은 내 눈앞에서 무너져 내렸다. 학식 꽤나 있어 보이는 젊은 어머니가 어린 딸에게 그런 망발을 한다는 사실이 도무지 믿어지지가 않았다. 그들은 곧 내시야에서 사라졌지만 그후에도 나는 내내 씁쓸한 기분이었다.
처음에는 아내된 여자의 의식이 문제라고 단순하게 생각했지만 이내 생각은 그녀를 둘러싼 주변 사람들에게로 옮겨갔다. 죽음과 연관시킬 정도라면 그동안 얼마나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던 것일까? 만약 태아 감별로 딸이라는 사실을 확인했다면 그녀 또한 낙태라는 방법을 택하지 않았을까?
한국과 중국은 태아 성감별을 통해 가장 많은 낙태를 자행하는 국가로 국제사회에 알려져 있다. 전세계적으로 6천만명의 생명이 여자라는 이유로 인해 어머니 뱃속에서 죽임을 당해야 했다. 최근 국제 워크숍에서 만난 아프리카 시에라 리온의 여인은 한국에서는 여성들도 교육을 받냐고 물어왔었다. 대부분의 여성이 고등학교 이상의 교육을 받는다고 하자 그녀는 부럽다고 했다. 초등학교 조차 다니지 못하는 시에라 리온의 절대다수 여성들의 처지를 개탄하면서.
그러나 한국 여성의 의회와 고위직 진출 비율이 아프리카 최빈국보다도 못한 세계 최하위 권임을 나타내는 부끄러운 통계수치를 보며 여성의 교육수준에 따라주지 못하는 우리의 사회적 여건을 절감하게 된다. 여성의 인권 존중은 페미니즘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생명'의 문제이다. 지금 세계 곳곳에서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귀한 생명들이 태어나기도 전에 살해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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