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정이 가까운 시각. 버스는 공항으로 향하는 도로를 질주하고 있었다. 갑자기 속도를 줄였다. 누군가 말했다. 교통사고가 났다고. 창가에 앉아 있었던 나는 얼른 고개를 돌려 밖을 내다 보았다. 순식간이었지만 나는 고통에 찬 소녀의 울음소리를 들었고, 공포에 질린 눈동자를 보았다. 피투성이가 되어 쓰러진 열두 살 남짓한 소녀의 곁에는 그녀가 행상을 위해 가지고 나왔음직한 과일 바구니가 나동그라져 있었다.
그것은 아프리카 서부의 가난한 나라 코뜨디브와르의 수도 아비잔에서 마주친 광경이었다. 버스 안에는 소위 선진국으로 분류되는 나라의 사람들이 타고 있었고 며칠 동안 머물렀다가 그 나라를 떠나는 길이었다. 살아있다! 소녀를 본 누군가가 다시 외쳤고, 버스에 탄 우리 모두는 「살아 있다구? 죽지 않아 정말 다행이다」 등의 대화를 나누면서 아이가 살아있다는 사실을 기뻐했다.
그러나, 과연 소녀가 살아 남았다는 사실만으로 기뻐해도 되었던 것일까? 어쩌면 아이는 완치되기 힘든 부상을 입었을 지도 모르고, 다행히 완치가 되었다 하더라도 다시 과일 바구니를 들고 위험하고 어두운 거리로 나가야 했을텐데.
실제로 개발도상국의 어린이 2억 5000만명이 과중한 노동에 시달리고 있으며, 1억 3000만 명의 어린이가 초등학교에 입학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어린이의 생명을 지켜 주는 일이 중요하다면 살아남은 그들이 교육을 제대로 받으며 건강하게 자라도록 하는 일 또한 인류에게 던져진 중요한 숙제일 것이다.
올해는 유엔에서 「아동의 권리에 관한 국제협약」이 채택된 지 10주년이 되는 해이다. 생명을 유지할 권리, 보호받을 귄리, 발달의 권리, 참여의 권리 등 어린이가 누려야 할 모든 권리를 보장하고 있는 이 협약은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국가의 비준을 받은 인권협약이다. 채택 10주년을 맞는 이 협약의 조항들이 문서상의 죽은 내용이 아니라 국제사회와 각 나라의 정책결정자들을 실천으로 이끄는 생생한 길잡이가 되기를 갈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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