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형제 수사님들 사이에 가끔 입에 담으며 파안대소하는 웃지 못할 하루를 적는다.
미국에 몇년 가 있다가 논문을 마치고 귀국하여 얼마 되지 않은 가을, 함께 학교에서 일하는 수사님들과 강화도에 바람쐬러 나갔을 때의 일이다. 초지진 옆의 한 식당 입구의 진열장엔 메뉴와는 잘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불군디(적 포도주)로 보이는 포도주 몇 병이 놓여 있어 음식을 주문하고 주인에게 포도주를 어떻게 파느냐고 물었다. 내 속셈은 잔으로 파는지 병째 파는지를 물은 것이었다. 주인 여자는 도대체 식사가 거의 끝날 때까지 응답이 없었다. 얼 마가 지나 다시 물었다. 돌아 온 대답은 우리 일행 모두를 당혹케 하고 말았다. 『아저씨, 그건 포도주가 아녜요. 와인이에요. 흰 것은 화이트이고 붉은 것은 레드예요』
당당하고 기가 살아 있는 그 태도에 주눅이 든 우리는 서둘러 나와 기분이 상하여 다른 곳으로 차를 마시러 갔다. 그런데 여기에선 우리의 기분을 알기라도 하는 양 한 수 위였다. 커피를 시켜 우유나 크림 등이 있으면 달라는 나의 말은 무식한 사람에게 내뱉는 한 마디의 말로 더 이상 대꾸를 하지 못하게 하고 만 것이다. 도대체 레귤러 커피 정도도 마셔보지 못한 그런 사람으로 치부하는 듯한 인상이었다. 『그 커피 그냥 마시는 거예요』
블랙으로만 마셔야 한다는 한 수 가르쳐 준다는 식의 강제 훈령인 셈이었다. 우리 일행은 또다시 침묵으로 커피를 탕약 마시듯 하였다. 하기야 조선조 말 명성황후는 러시아 공사관에서 진상한 커피를 「양탕국」이라 하여 감기약으로 들었다니 눈감고 약으로 마시면 되련만 유난히 마음이 시리고 서러운 하루였다.
아마도 그보다 몇 해 전에 있었던 일은 이런 일들의 예고편이 되겠다. 어느 주말 산사의 뒷산으로 등산을 갔을 때의 일이다. 철이 좋아 산야가 그리 고울 수가 없었다. 한참을 오르려니 길섶에서 웬 남자가 나를 불러 세우고 자랑삼아 떠들어댔다. 『여기 한국산 키위가 있어요』 온 산이 떠나갈 듯한 우렁찬 목소리는 당당하였다. 두 아들이 옆에 있었음은 말할 것 없다. 한참을 물끄러미 있다가 하도 딱하여 『여보, 애들이 듣지 않소. 그건 한국산 키위가 아니라 다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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