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나는 참을 수 있을 때까지 참는다고 결심하고 참았지만 9개월이 되자 더 이상은 참을 수가 없었다. 임신중독으로 몸이 많이 부어 있었다. 더 이상 숨을 쉴 수가 없어 죽을 것만 같았다.
급히 서둘러 병원으로 갔다. 의사 선생님이 나를 보시자마자 급하게 마취를 시키고 제왕절개 수술을 한 것이다. 하지만 너무 상태가 심각했었기에 아기는 오후 5시 8분에 꺼냈지만 나는 깨어나질 않아서 모든 의사들과 남편은 내가 잘못된 줄만 알고 걱정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
밤 12시가 되서야 깨어났다. 남편은 무척이나 놀랬다고 한다. 깨고 나니 너무 심하게 아파서 견딜 수가 없어 소리를 지르며 울었다. 간호사가 "아기 엄마가 되셨어요. 아기 보고 싶지 않으세요"하고 말을 했다. "예쁜 딸을 낳았어요. 울면 엄마 자격 없어요"하며 말했다. 그리고 12일만에 퇴원을 해서 집으로 아기를 안고 돌아왔다. 동네 사람들이 아이가 아이를 낳았다며 고맙다고 하며 미역도 가져왔다. 남편은 미역국을 끓여주고 아기 기저귀도 빨아주고 집안 일을 해 주었다.
식구가 늘고보니 살림은 더욱 어려웠다. 기저귀 빨래 할 비누 1장 살 돈도 없고 생각다 못해 설탕 뽑기 장사를 시작했다. 소자본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이 장사 밖에 없는 것 같았다.
어느덧 1년이 지나 둘째 아이를 갖게 되었다. 첫 아이처럼 9개월만에 제왕절개로 아이를 낳았다.
이번에는 아들이었다. 이렇게 사는 동안 아이들이 컸을 때 일을 다 같이 가던 아이가 오지 않아 뒤를 돌아보니 모르는 아이와 싸우고 있었다. 네 엄마는 '조그만 엄마'하고 놀려서 싸우는 것이다. 그러자 그쪽 부모가 우리 아이들을 때리고 내가 또 달려가고, 아이들 싸움이 어른들 싸움으로 이어졌다. 다음부터는 모든 시선을 나한테만 집중시키려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길을 갔다. 얼마 후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입학을 했다. 이러한 일들은 학교에서도 종종 일어났다. 부모 잘못 만난 죄로 이렇게 아이들이 상처를 받아야 하는지 마음 속으로 나는 울게 되었다.
딸 아이가 말했다. "엄마, 아무데도 가지말고 화장실만 가라"며 딸 아이도 울고 말았다. 그때 나는 죄인이 된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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