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이 아니었습니다. 지난 며칠간 거의 탈진 상태에 빠져 있었지요. 결국 어제는 수술을 받아야 했습니다. 그 동안 얼마나 아팠을까요? 제가 아니라 우리 수연이가. 수연이는 제 컴퓨터의 이름입니다. 아직은 컴맹에 가까운 제 생각엔 수연이가 소화불량이나 급성 맹장 같은 것이 아닌가 했는데 컴도사 생활문화 연구소 정실장의 말로는 시스템이 다소 엉긴 것 같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어제는 서비스 센터에서 나와 시스템을 다시 깔았지요. 내장이 깨끗해져서인지 수연이의 얼굴색이 환해진 듯 합니다.
환해진 수연이의 모습을 보다가 문득 떠오르는 또 하나의 환자가 있었습니다. 요즈음 시스템이 엉긴 듯 삶의 표정이 밝지 못한 바로 제 자신의 모습.
그렇군요. 정작 더 시급하고 절실하게 수술해야 할 것은 수연이 보다도 유진이(아, 유진이는 제 이름입니다) 제 자신입니다. 제 자신의 의식과 삶 안에 엉겨있는 것들 - 그 욕심과 걱정과 미움의 때를 비워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비워낸 자리에 새 프로그램을 깔고자 합니다. 기쁨, 겸손, 온유, 절제, 희망, 친절, 진실, 선행, 인내, 사랑, 믿음, 평화, 은총, 지혜, 감사, 찬미, 영광, 슬기, 친교, 화목의 프로그램 - 적고보니 모두 우리 구역의 이름이군요.
죄송합니다만, 당신도 혹시 당신의 품질을 업그레이드 시키길 원한다면 먼저 내 안에 엉긴 것들을 비워내야 한다고 생각하시지 않습니까? 새 천년에 맞는 환경을 내 삶 안에 꾸미길 원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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