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은 계절의 맨 끝에 있다.
끝이 시작이랄 수도 있지만 한 계절의 매듭을 상징하는 겨울은 아무래도 끝이 옳은 말이다. 말하자면 겨울을 잘 보내는 일이야말로 계절의 완성이요 한해의 완성 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한해의 완성이 풍부하고 겸허했다면 그의 삶 또한 성실과 충만으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누구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준비하며 맞는 계절
그렇다.
겨울은 한 계절의 마무리요 마지막 바느질 한 뜸의 결실이기도 한 것이다. 그러나 그 한 발자국의 완성이 왜 그렇게 고난스럽고 어려운가에 대해 우리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
봄 여름 가을을 잘 보내고 겨울을 불경스럽게 보낸다면 그 한해의 의미와 한 사람의 삶이 엉터리로 보일 뿐만 아니라 초라하기 그지없는 모습이 되고 말 것이 뻔하다.
겨울을 겨울답게 보내는 일 그것은 바로 인간이 인간답게 사는 일과 다르지 않다. 마지막 한 발자국의 완성이 건너기 어려운 강이라는 것은 인간의 오만과 과장된 자만심을 자각하라는 무서운 불호령의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사계절 중 준비를 하면서 맞는 계절은 그래서 겨울 밖에 없다. 겨울준비, 그것은 먹는 일에만 그치는 일이 아니다. 지난 며칠전의 폭설은 예보는 되어 있었지만 누구도 그만큼의 수난을 예감하고 준비한 사람은 없었다.
우선 고속도로의 죽음과 같은 정체와 잇따른 사고 소식은 겨울이 주는 골 깊은 교훈이었던 것이다. 그동안 따뜻한 온난화의 겨울과 한파 뒤의 아쉬우면서 적당한 그 눈의 분량은 폭설의 예보를 듣고도 모두 얕보았던게 아닌가 한다.
낭만과 정서적 상상력에 반갑게 바라보리라 기대했던 그 눈은 아름다운 서정의 희고 눈부신 시가 아니라 생명을 반납해야할 무서운 검은 손이었던 것이다. 무엇보다 믿음의 미덕이 상실된 시대의 일그러진 얼굴을 우리는 떠올려야했던 것이다.
기상청의 더러 틀리는 보도는 그래서 옛날 동화에 나오는 호랑이를 본 아이의 거짓말과 같은 불행을 가져오고 그보다 자기 나름대로의 자칭 진단이 늘 우리에게 복병의 그림자를 가져왔다는 것을 자각 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전문가를 의심하는 자만은 결국 아찔한 결과를 가져 온다는 것을 이번 폭설은 보여주었던 것이다. 그렇다. 착오는 불행이다. 혼자의 불행이 아니라 모두의 불행이라는 점에서 시대적 착오와 개인의 시각착오는 괴로운 결과를 가져오고 만다.
그것은 바로 인간적 망각이 아니던가. 오늘 우리가 격는 모든 세태적 우울은 모두 여기에 기인한다.
새천년의 애절한 희망
정치며 경제며 새천년의 첫 발걸음이 비틀거리는 것도 지난해의 완성이 인간적 완성이 아니라 개인적 완성으로 변질된 사회 풍토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예수님이 마지막 계절의 끝에 그것도 겨울에 그것도 새벽에 그것도 구유에서 태어나신 이유는 무엇이겠는가. 한없이 겸손하고 스스로를 낮추는 희생적 사랑이야말로 계절의 완성과 삶의 완성의 빛남이 그 안에 드리워져 있을 것이라는 것은 너무 당연하다.
우리는 지금 인간애의 향수에 목마르다. 번성과 발전에만 목이 마르는게 아니다. 인간애의 귀환이야말로 지금 우리가 새천년에 바라는 애절한 희망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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