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관들은 선교사나 신자들한테서 다른 대답들을 끌어내보려고 아주 잔인무도하게 고문을 하였지만 소용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들은 모두 마음을 굽히지 않고 천주교 신앙을 고백하였을뿐 다른 말은 전혀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토록 고통스러운 고문을 받으면서도 기쁜 마음으로 고문을 달게 받으며 끝까지 한결같은 마음을 유지하는 모습을 보고는 관리들까지 놀라움을 금치 못하였습니다』
아는 것 없음
1802년 북경의 구베아 주교가 신유박해로 인한 조선교회의 상황을 보고하기 위해 포교성 장관에게 보낸 편지의 한 대목 이다. 새해들어 한국교회의 화두는 신유박해인 듯하다. 교회 언론이 그렇고 제단체의 시성시복추진 운동이 그러하다. 그러나 일선 본당이나 신자들에게서는 큰 열의를 느끼지 못하는 것은 무슨 연유일까
아마도 신유박해 순교자에 대해 「아는 것 없음」에서 나오는 미필적 고의에 의한 무관심이라고 여겨진다. 박해나 시성 운동이 중요성을 갖는 것은 「피흘려 죽은 행위」가 아니라 「피흘려 죽기까지 지켜온 삶과 신앙」이 눈물겹고 본받을 만 하기 때문인 것이다.
그리고 그 감동적이고 영웅적인 삶 안에서 사랑 가득찬 하느님의 섭리와 희망을 발견하는데서 순교자에 대한 애정이 솟아난다. 그리고 그 애정이 공경으로 이어지는 것인데 지금 한국교회의 신자들에게는 공경을 위한 첫 단추가 꼬여있다.
신유박해라는 말만 들었지 당시에 피흘리기까지 신앙을 지켜온 영웅담을 모르는데 무슨 애정이 어떤 공경이 있을 수 있기를 바랄 것인가. 이미 우리는 1984년 103위의 성인을 탄생시키면서 시성에만 몰두한 나머지 순교자들의 삶과 영성을 신자들에게 제대로 전하지 못한 우를 범한 적 있다. 그 결과 별 애정 없는 성인들을 모시고 있다.
성인이란 호칭은 사실 순교자들에겐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 분들은 이미 하느님 앞에서는 성인이요, 복자다. 신앙 때문에 세상의 명예를 초개같이 버린 분들에게 200년이 지난 뒤의 명예가 무어 그리 대수로울 것인가.
결국 시성시복은 산 자들. 죽음의 값을 치르고 신앙을 물려받은 우리들을 위한 것이다. 순교자들의 삶과 영성을 밝혀내고 공부해서 우리 삶으로 강생시키는 것, 더 이상의 의미는 없다. 순교자들의 삶을 배우면서 지금의 생활을 회개하는 삶을 사는 것이야 말로 뜻깊은 신유박해 기념 200주년을 사는 길 일 것이다.
죽음의 값치른 신앙
시성시복은 그 다음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빛나는 조상의 업적에 대한 공식추인이 먼저가 아니라 선조들의 삶을 따르는 우리의 삶을 보고 모든 이들이 그 분들을 성인으로 추앙하지 않을 수 없게끔 하는 것이 앞서서 해야 할 일이라는 것이다.
신유박해 당시의 순교자들은 성직자들의 도움없이 스스로 성경과 신심서적을 공부하며 교의를 깨우쳐 믿음을 생활 속에서 철저하게 실천해온 분들이다. 따라서 당시 순교자들은 피흘림만이 아니라 삶 속에서 매순간 하느님의 계명을 선택하고 사랑하면서 죄악과 악습에 대하여 죽는 것도 순교로 이해했다.
이런 의미에서 달레 신부는 당시 교회를 「성령께서 직접 인도하신 교회」라고 했다. 신유박해 200주년을 맞아서 성령께서 직접 이끄신 교회에 대해 사목자는 가르치고 평신도는 배우고 알아서 아는 만큼 사랑하고 공경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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