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대희년, 새 천년기의 첫 성탄을 맞았다. 어김없이 올해도 아기 예수가 탄생하신 것이다. 강보에 싸여 누워계신 예수 아기가 오늘 우리들에게 다시 오셨다. 왜 이렇게 예수님은 매년 우리를 찾아오시는 것일까. 오늘 맞이하는 대희년의 성탄은 우리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다 함께 생각해 볼 때다.
지나간 한 해는 우리 모든 신앙인들에게는 특별한 의미가 있는 은총의 한 해였다. 『올해는 많은 계층의 사람들을 기억하는 여러 가지 대희년 행사가 있었으며, 그 행사들은 아름다운 의미를 가지고 잘 마무리 되었다. 자유와 해방, 은총과 기쁨을 보다 더 직접 체험하는 계기를 마련 하기 위해 준비된 올해의 행사들은 그 행사의 화려함이나 규모를 논하기 전에 참으로 아름다운 선물이었습니다. 올해를 살고 있는 우리 모두는 행운을 얻은 사람들』이라는 수원교구장 최덕기 주교의 성탄메시지가 가슴에 와 닿는다.
3년전 겪었던 국가부도위기가 재연되지 않을까 하는 불안한 시기에 맞이하는 이번 성탄은 세기가 바뀌는 시점에서 맞이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무엇보다 새 천년기를 시작하는 지금 우리는 중요한 도전에 직면해 있다.
물질 중심주의와 극심한 이기주의가 그것이다. 이로 인해 도덕적 가치와 정신적 가치의 소중함을 점점 잃어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우리 사회 전반에 만연해 있는 생명경시 풍조는 하느님의 모상을 닮은 인간의 존엄성을 근본적으로 흔들어 놓고 있다. 또 오늘의 지구촌은 신자유주의 물결에 휩쓸리면서 무한 경쟁을 일삼아 부유한 나라와 가난한 나라간의 격차가 더욱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20세기가 우리 인류에게 안겨준 어려움은 두 번의 큰 전쟁이 있었 지만 세기말에 와서는 이보다 더 큰 시련이 닥쳐왔다. 사회적인 단절, 양분화, 빈곤의 확산, 소외 그리고 이와 병행하는 인종차별 주의와 편협이 그것이다. 전세계 모든 나라가 시차를 달리할 뿐 겪고있거나 겪게될 아픔인 것이다.
인류는 근본적인 선택의 기로에 놓여 있다. 즉 사람들 사이에 골이 깊게 패이고, 점점 더 개인주의적이고 폭력적으로 되어가는 사회를 체념적으로 받아들이느냐, 아니면 개인적으로 그리고 집단적으로 모든 수단을 동원해 좀더 공평하고 평온한 사회를 세워 나가느냐 하는 것이다.
실업에 처한 사람들, 불안정한 상태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을 우리가 이끌어주지 않는다면, 노동과 소득을 나누어 갖는 새로운 제안을 내놓지 않는다면, 모든 희망을 잃고 막다른 골목에 처한 그들이 우리가 나누어 가지려고 하지 않았던 것들을 폭력으로 가로채려고 할 것이다.
이는 국가적인 차원에서 뿐만아니라 세계적인 차원에서도 해당 되는 것이다. 어떻게 해서라도 우리는 새로운 나눔을 행하지 않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나누어 갖는다는 것은 이제 피할 수 없는 길이다. 우리가 지녔다고 주장되는 소위 신성불가침의 소유권을 다시 문제삼아야 한다.
오늘날 발생하고 있는 실업은 세계화 과정의 불가피한 산물이며, 만일 해결책이 있다면 그 또한 세계적인 차원에서 생각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재화는 무한하게 늘어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재화는 한정되어 있고 세계의 인구는 끊임없이 증가하고 있기 때문에 재화를 재분배하는 일이 필요할 뿐만 아니라 전반적으로 노동을 줄이고 이에 따라 소득도 줄여야 한다는 것을 받아 들여야 한다.
다시 말하지만 세계화로 인해 오늘날 우리는 보다 넓은 수준에서 재화를 재분배하는 것을 포함한 새로운 문명을 선택할 수 밖에 없는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점점 부유해지는 소수의 부자들이 무관심하게 바라보는 가운데 인구의 대부분이 무한대로 가난에 빠져들도록 내버려 두어서는 안된다.
또한 돈, 사회적 성공, 영리적인 활동 등이 삶의 본질이 아니라는 사실을 재발견해야 한다. 삶의 진정한 본질은 다른 가치, 다른 방식으로 생활하고 시간을 쓰면서 사회적으로 쓸모있다고 인정받는 것이다. 영리적이지 않지만 인간적인 세상을 만드는 활동들을 발전시켜야 한다. 이러한 것들이야말로 살아가는 목표와 이유를 밝혀줄 것이다.
무엇보다도 우리 각자가 형제애를 되찾아야 한다. 사실 우리는 행복이라는 똑같은 목표를 추구하고 있다. 정말 중요한 것은 어떤 수단을 선택하는가이다. 자라온 문화, 생활환경, 시대가 무엇이든 간에 모든 사람은 다른 사람이 없이 나만 행복하기를 원하느냐, 아니면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행복하기를 원하느냐 라는 두가지 길 중에 하나를 선택할 수 밖에 없다. 매일 아침마다 되새겨야 하는 이 선택은 가장 근본적인 선택이다.
형제같은 나눔을 통해서 생존의 이유를 갖게해주고 각자가 쓸모 있는 사람이 되도록 해주는 것은 그 어느 때 보다 지금 우리 사회에 긴요한 것이다. 지금 우리안에 다시 오신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의 최후의 계명이 바로 이웃 사랑의 계명이다. 『내가 너희에게 새로운 계명을 주노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 하여라(요한 8장)』.
대희년이 저물어 가고 있다. 한주간 만 지나면 새해다. 새해뿐만이 아니라 새 세기가 시작된다. 해가 바뀐다는 것은 쳇바퀴 도는 무료한 삶에 생기를 불어넣어 준다는 점에서 아주 뜻깊다. 진저리 나는 묵은 번뇌를 삭 다 걷어내고 예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겠다는 새해설계를 구유 앞에서 조용히 꾸며보는 성탄절이 되도록하자.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