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진암 가르멜 수녀원에 새로운 식구의 얼굴이 보입니다. 수유리 가르멜 수녀원에서 입양되었다는 밤돌이라고 하는 강아지입니다. 늘 마당 한켠에 있는 자기집에서 혼자 자는 밤돌이는 아침 미사 후에야 루시아 자매가 목고리를 풀어주는데 하루는 제가 루시아 자매보다 먼저 가서 목고리가 아닌 개집에 달린 고리를 풀어주고 불렀더니 밤돌이는 자기가 풀려있는 줄도 모르고 제자리에서만 껑충껑충 뛸뿐 제게 달려오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 바보같은 모습에 루시아 자매와 저는 파안대소했습니다만 곧 밤돌이의 모습이 제 모습처럼만 느껴져 그날 하루종일 묵상거리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하느님께서 이 세상이라는 개집으로부터 이미 줄을 풀어주신 밤돌이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늘 습관처럼 묶여있는 목고리 때문에 자신이 이미 자유로와진 존재인 줄도 모르고 개집 주위만을 맴도는 어리석은 밤돌이가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자신이 묶여있는 존재라고 고집하는 우리를 보시며 하느님께서는 얼마나 웃고계실까요. 밤돌이와 낯을 익힌 저는 함께 뒷산 앵자봉까지 올랐습니다. 모든 개들이 그러하듯이 밤돌이도 초행길 길목마다 뒷발을 처들고 오줌을 찔끔찔끔 갈겨놓습니다. 무슨 놈의 오줌이 저렇게도 한없이 나오나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자신의 위치를 수시로 점검해놓는 그 본능적인 동작에 생존의 진지함마저 느껴집니다. 등산객들이 길목 가지마다 매어놓은 빨간 리본들처럼 후각이 발달한 개들은 오줌으로써 자기의 행적을 표시합니다.
그날 저는 산을 내려오면서 나는 얼마나 철저하게 지금 내가 가고 있는 길을 확인해가며 살고 있는가 하는 반성을 해보았습니다. 어디를 가더라도 밤돌이처럼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자기 길을 가야겠다고 다짐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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