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0평 땅에 제초제 5000원어치만 뿌리면 논바닥이 닦아놓은 유리알처럼 맑아지는데도 미련스럽게 풀매기를 일삼으며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 있다.
세상에 쉬운 일이라곤 없는 법이지만, 풀매기 역시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런데도 5월 20일경 모심기를 하면 그 다음부터 9월까지 풀과 씨름을 해야만 한다.
푹푹 찌는 땡볕, 절절 끓는 논물에 발을 담그고 풀을 매노라면 햇볕은 밀짚모자 하나로 버티기에는 턱없을 정도로 사정없이 쏟아져 내린다. 그런데 왜 이들은 미련스럽게 이 노릇을 계속하는가?
천주교 신자로서 농사를 짓다보니 그놈의 양심을 팔아먹을 수 없기 때문이다. 안동교구의 우영식씨는 성당에 열심히 다니다보니 자연스럽게 가톨릭 농민회에 가입하게 되었고, 이제는 농사를 생명운동으로 알고 투신하게 되었다.
요즘 언론에서 하는 얘기를 들으면 신생아들에게서도 농약성분이 검출된다는데, 이게 어디 사람 사는 세상인가?
조상 대대로 농사를 지어먹고 살던 민족이 근대화의 물결에 따라 너도나도 돈이 보이는 산업전선으로 뛰어들고 이제는 농민의 숫자가 10분의 1도 안 되는 실정이다.
그러다 보니 우리 나라의 식량자급도는 30% 미만으로 떨어질 수밖에… 아직은 나라 경제 사정이 국민들을 다 굶길 정도는 아니어서 부족한 식량이야 모두 수입하면 그만이라지만 그 수입농산물이란 게 모두 유전자 변형에 화학약품처리까지 완벽하게 된 것들이라 알고 보면 국민 대다수가 매일매일 독극물을 먹고 마시는 셈이다.
이런 처지에 내 식구들 먹일 거 아니니 신경 쓰지 말자고, 양심 뚝 떼어 밀쳐두고 비료에 농약까지 듬뿍 쳐서 때깔 좋은 농산품 만들어 팔아먹자니 하늘이 무서워 그 노릇은 못하겠다.
세계 식량 사정이 점점 악화된다 하니 언젠가는 돈 가지고도 살 수 없는 날이 올 터인데, 그 때 땅이 모두 산성화되어 농사조차 지을 수 없게 되면 모두 앉아서 굶어 죽을 판 아닌가?
이런저런 생각에 하느님의 피조물들이 숨쉬는 땅에 차마 농약통을 들이대기가 쉽지 않다. 그렇게 농사지어 도시본당에 들고 올라오면 철딱서니 없는 도시인들 격려는 못할지언정 「이거 진짜 유기농이에요?」하고 복장을 지른다.
「에라, 나도 모르겠다. 이놈의 농사 집어치우고 공사판에나 뛰어들까보다」하는 생각도 해보지만 가장 미소한 자에게 해준 것이 나에게 해준 것이라는 성서말씀이 발목을 잡는다.
땅 죽으면 농촌도 죽고 도시도 죽는데 그 쉬운 이치를 왜 배울 만큼 배운 사람들이 모르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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