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대통령의 평양방문 둘째날, 옥류관에서 냉면 점심을 앞에 놓고 대통령이 성호를 긋는 모습을 많은 국민이 빠른 TV화면에서도 놓치지 않았을 것이다. 대통령의 이 모습을 본 사람들 중엔 잠시나마 놀란 사람도 적지가 않은 것 같다. 솔직히 나도 그 중 하나였다. 보기에 따라서는 너무도 의외였기 때문이다.
김대중 대통령이 가톨릭 신자라는 것과 신자라면 식사 전에 반드시 성호를 긋는다는 것은 다 아는 일이다. 그런데도 내가 이 모습을 보고 크게 놀란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북한이 가톨릭을 포함한 기독교를 배척해온 공산주의 나라인 것으로 볼 때 이 일이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키는 일에 무슨 걸림돌이라도 되지나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또 다른 하나는 국민들에게 온통 거짓투성이로만 보이는 정치세계에서 대통령으로까지 성공한 그가 과연 가톨릭 신자로서 신자다운 생활을 했을까 하는 의구심을 가졌던 내 생각에 대한 놀라움이었다.
그러나 이날 저녁 정작 우리 모두를 놀라게 한 내용의 남북합의문이 발표되는 것을 보면서 나는 새삼스럽게 이날 대통령의 식사전 성호의 의미를 되새길 수가 있었다.
누가 무어라고 해도 이번 김대통령의 성공적 방북결과는 그의 피섞인 기도의 힘이었을 것이라는 확신이 그것이다.
조그만 행동 하나로도 북한 사람들의 눈을 거슬러서는 안된다는 생각을 그가 하지 않았을 리 없으며 스스로 가톨릭 신자인 것을 드러내 보임으로써 다른 종교인들에게 굳이 반감을 갖게 할 까닭이 또 어디 있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한 그의 자연스런 식사 전 기도는 죽음 앞에서도 지켜온 그의 신앙의 모습이고 중대한 모든 것을 하느님께 의지하려는 차라리 순박한 마음 그대로였을 것이라고 보았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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